▲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너와 나[彼此], 윗사람과 아랫사람[上下]이 서로 감응(感應)해서 느낄 수 있지만 느끼는 것 중에 남녀의 느낌, 그 중에서도 젊은 남녀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기 때문에 주역에서는 산을 소남(少男)으로 보고 못을 소녀(少女)로 보아서 함괘(咸卦)의 뜻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덕수궁의 함녕전은 크게는 '만국함녕'의 뜻으로 볼 수 있겠지만 결국 '남녀함녕'의 의미로 보아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주역의 글은 하나의 글자를 놓고도 이처럼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다.
느끼는 뜻으로는 대개 감(感)자를 쓰지만 주역에서는 감(感)자와 함(咸)자를 구별한다. '감'은 '마음 심(心)'자가 있으니 이는 사심(私心)으로 느끼는 것이요 '함'은 무심(無心)으로 느끼는 것이다. 무심이란 다름아닌 무욕(無慾)을 말한다. 옛날 어떤 사람이 주렴계 선생에게 물었다. “성인을 배울 수 있는가? 있다! 요체는 무엇인가? 일(一)이다! 일은 무엇인가? 무욕이다!”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 일이요 무욕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일(一)이란 정신일도를 말한다. 욕심은 눈과 귀와 입을 통해서 움직이니 세 곳을 어둡게 하고[三昧] 가만히 앉아 있으면, 욕심은 없어지고 정신이 하나로 모아진다. 이때의 하나[一]는 개체로서의 한 개를 말함이 아니요, 무욕에서 얻어지는 내 몸에 가득 채워지는 천리(天理)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만법귀일(萬法歸一)에 일귀하처(一歸何處)요'하는 바로 그 자리라 하겠다. 도통의 경지는 아마 이 자리일 것이다. 정신일도를 주역에서는 적연부동(寂然動)이라 표현하니 마음이 적연부동하면 정신이 맑아진다. 이 자리에서 느끼면[感] 천하의 연고(緣故)를 다 통할 수 있다 했다. 방안에 있어도 집 밖의 일, 넓게는 세상의 물정(物情)을 알 수 있고, 꽉 막혔던 바깥 경계가 확 뚫리는 것이 바로 무욕(無慾) 속에서 가능함을 말한 것이다.
이같이 천하의 연고를 통하고 삼세(三世)를 경계없이 자유스럽게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성인(聖人)이라 말할 수 있다. 성인의 성(聖)이란 '무불통(無不通)'의 뜻이다. 파자하면 耳+口+壬자가 되니 즉 '귀[耳]로 듣거나 입[口]으로 말하는데 으뜸[王]인 자'를 성인으로 정의한다. 공자가 말씀하신 60의 이순(耳順)과 70의 '욕심을 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이 성인이다. 주역 함괘에 '천지가 감응(感應)함에 만물이 화생(化生)하고, 성인이 천하 사람들과 감응하니 천하가 화평해진다'하였다. 무심 속에서 천하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느낄 수 있는 자가 성인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무욕할 수 있음이 범인으로서는 쉽지 않다. 대신 과욕(寡慾)을 제시하고 있다. 과욕 속에서도 세상을 느낄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욕심의 많고 적음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군자와 소인이다. 소인은 욕심이 많고 자기 자신만을 위하므로 세상을 느낄 수 없다. 이웃집이 싸워도 문꼭 걸어놓고 오불관언(吾不關焉)이요, 세상이 어찌되건 나만 잘살면 그만인 자다. 반면에 군자는 욕심 없이 세상을 대한다. 마음이 이웃에 미치고 세상에 미치고 금수나 초목에까지 은택이 두루 미친다.
『주역』에 성인이 출세함을 일컬어 '수출서물(首出庶物)에 만국함녕(萬國咸寧)이라'했다. 세상이 어둡고 혼탁할수록 사람들은 성인이 출세하기를 염원했다. 그나마 욕심이 좀 더 적은 사람이라도 나타나서 세상을 이끌기를 갈망했다. 적어도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성인은 아니더라도 세상을 느낄 줄 아는 자가 지도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역학자·홍역사상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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