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편집부국장 |
2009년 8월 말 심대평 대표의 탈당이후 2년 만의 일이다. 자유선진당과 국민중심연합의 통합은 곧 이회창ㆍ심대평 두 정치인의 재결합을 의미한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 상황도 이들의 재결합을 재촉한 측면이 있다. 올해의 정치 풍경은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있었던 2007년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07년의 대선은 이회창이라는 변수를 빼놓을 수 없다. 야인으로 남을 것 같았던 이회창은 그해 1월 대전 연정국악회관에서 '대한민국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특강을 했다. 대권 3수의 신호탄이었다. 수천명이 운집했던 연정국악회관은 '이회창을 대통령으로'라는 구호로 메워졌다. 한나라당은 당황했지만 이회창의 측근 이흥주 특보는 “이회창의 대선출마가 한나라당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르는데 섣불리 판단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보수층의 분열이 아닌 결집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이흥주의 분석은 그해 말 대선에서 입증됐다. 당시 대선출마를 선언했던 국민중심당 심대평 대표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박근혜 전 대표, 고건 전 총리 등에 헌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제안했다. 책임 총리제와 지방분권 등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대토론회를 갖자는 제의였다. 사실상 이회창과 박근혜를 향한 러브콜이었다. 대권 3수에 도전한 이회창에 대해서는 “오죽하면 나서겠나”라는 말로 심정적 지지를 보냈다. 18대 총선이 임박했던 2008년 2월 1일 국민중심당은 이회창을 총재로 영입했다. 간판을 자유선진당으로 바꿔 달았으나 1년 여 후 심대평은 '총리직 파동'으로 당을 떠났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의 인생사가 정치에도 통용되는 것일까? 이회창과 심대평의 결합은 이제 시간의 문제로 남았다.
통합 후 자유선진당을 짓누를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내년 4월 총선을 어떻게 치르느냐는 당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명확한 대선 후보가 없을 경우 충청지역에서의 총선 승리는 장담하지 못한다. 얼마전 우연히 만난 정치인들의 고민도 이 문제에 몰려 있었다.
대권을 잡지못하는 '불임정당', 그것은 1987년 신민주공화당 탄생이후 이 지역정당에 새겨진 주홍글씨였다. '충청 대권'은 정치 9단이라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도 못이룬 숙제다. 내각제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지만 실패했다. 전체 유권자 10%에 지나지 않는 충청권이 영ㆍ호남 패권 정치 틈새에서 딛고 설 땅은 넓지 않다. 안희정 지사가 “영ㆍ호남 정치구도를 그대로 인정한다면 충청지역 정당은 영원히 3등”이라고 말했지만 정치는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선거 때만 되면 영ㆍ호남이 앞다퉈 '우리가 남이가'를 목청 상하게 외치는 정치 현실은 한방에 해결할 수 없는 고질적 병폐다. 권력 그것도 하늘이 내린다는 대권은 너무나도 달콤한 과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 제프리 페퍼 교수는 '권력은 사느냐 죽느냐는 생존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회창ㆍ심대평 양자가 결합하는 배경에는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는 듯하다. 양자의 결합은 당권과 대권주자의 분리로 해석할 수 있다. 두번이나 청와대 문턱까지 갔던 이회창의 대권 4수와 심대평의 복귀는 이웃집을 기웃거리는 당내 정치인들의 불안을 잠재울 유일한 선택으로 보인다. 제프리 페퍼는 권력자의 핵심 자질로 야망과 자신감 뿐만 아니라 자기 이해와 반성, 갈등을 인정하는 능력을 꼽았다.
통합 선언절차만 남겨두고 있지만 지도체제와 당명을 둘러싼 이견이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권력이 생존의 문제라면 기저에는 자기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당 간판을 수십번 바꾼다해도 처절한 자기 반성과 성찰이 없다면 유권자는 외면하게 돼 있다. 뼈를 깎는 고뇌와 고민 없이 표를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가르는 정치, 내탓이 아닌 네탓에 열을 올리는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이다. 충청 정치세력의 결집은 정치인들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영ㆍ호남 패권 구도를 돌파할 치밀한 전략없이 지역정서에 다시 기댄다면 유권자는 돌아설 것이다. 감동은 주지 못하더라도 진정성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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