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민 특허청 차장 |
그야말로 지식재산을 무기로 하는 '특허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첨단 특허기술의 전쟁터에서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자. 전 세계 인류 중 스마트폰 사용자는 10%미만이며 일반 휴대폰을 가진 사람 전부를 합해도 전체 인류의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 LED 디스플레이 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화질과 선명도가 뛰어난 LED TV까지 진화했다 하더라도 아직 흑백 TV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다. 가정에서 냉온 정수기를 통해 편하게 시원하거나 따뜻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지만, 아프리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물 부족과 오염된 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이들에게 스마트폰이나 LED TV는 그저 사치품일 뿐이며 당장 불을 뗄 연료를 조금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기술,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는 기술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첨단 기술이 아니더라도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 국민들의 현실에 꼭 필요한 수준의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적정기술이란 선진국에서 활용 가치가 적지만 개도국에서는 효용이 큰 기술을 말한다. 적정기술은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 않고, 에너지 소모가 적으며, 누구나 쉽게 배우고 적용할 수 있어 유지보수가 가능해야 한다. 또한 가급적 현지에서 생산하는 재료를 쓰고, 적은 규모의 사람이 모여 제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기술이다.
10%미만의 인류에게 혜택을 주는 최첨단 기술과 달리 소외된 90%이상의 다수에게 필요한 첨단기술과 하위기술의 중간기술, 대안기술인 것이다.
맑은 물을 구하기 어려운 아프리카 주민들을 위해 개발된 빨대형 휴대용 정수기인 라이프 스트로(Life Straw)나 멀리 떨어진 식수원에서 물을 보다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고안된 줄로 굴릴 수 있는 원주형 물통인 Q드럼(Q Drum) 등 당장 아프리카 주민들의 현실에 꼭 필요한 수준의 기술이 그 좋은 예다.
특허청은 2009년부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특허정보를 활용한 적정기술 개발과 보급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해에는 국제구호개발단체인 굿네이버스(Good Neighbors)와 협력해 아프리카 등에 버려지는 사탕수수 껍질을 이용한 숯 제조기술과 버려지는 망고를 지역주민의 소득증대사업으로 개발한 건조망고 생산기술 등을 현지에 보급하였다.
올해는 캄보디아의 식수환경 개선을 위한 적정기술개발사업을 진행 중이며, 1억 5000만 건에 이르는 특허 데이터로부터 적정기술 개발에 필요한 정보검색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첨단 특허기술 분야에서 미래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원천·핵심 특허 확보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과 G20 정상회의 개최 등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발돋움한 국가품격도 고려할 때가 왔다. 특허 선진 5개국(IP5)에 속한 우리의 기술과 지식으로 소외된 다수의 저개발국의 국민을 돕는 지식재산 나눔사업에도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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