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 유적 전경. |
한국가톨릭성지순례단(단장 김정수 바르나바 천안신부동성당 주임신부)은 5월28일 성지순례 여섯째날을 맞아 고대도시 에페소로 이동했다. 그늘이 없어 매우 무더운 곳이지만 다행히 한줄기 비가 대지를 적셔준 덕분에 시원하게 에페소 유적을 감상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성 바오로, 에페소에 그리스도교 전하다=에페소는 터키 이즈미르의 남서쪽 약 50㎞ 지점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양쪽에 항구를 끼고 상업중심지로 발전했다. 기원전 620년경 이 곳에 세워진 아르테미스 신전은 소아시아에서 그리스에 이르는 지역에서 많은 순례자를 끌어 모았다.
소아시아의 서쪽 이즈미르와 아이든 사이에 위치한 고대 도시 셀주크의 바로 옆에 있는 이 곳은 기원전 7~6세기가 최전성기로, 기원전 6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 페르시아 전쟁으로 해방이 된 뒤에는 그 세력을 펼치지 못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 원정 뒤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러 경이롭게 부활했다. 1세기 성 바오로는 이곳에 그리스도교를 전했고 로마에서 이 지역 신자에게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오늘날 에페소의 폐허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서부 아나톨리아의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은 에페소는 로마시대에 오리엔트 속주 500여도시의 수도로서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 에페소 유적 기둥의 조각모습 |
▲바오로 추방 당하다=기독교의 시초에 기독교인들의 신과 우상을 모시는 자들의 신 사이에 불화가 있었는데 이 불화의 중심에는 사도 바오로가 있었다. 이 시대에 데메트리우스라는 장인이 아르테미스 신전의 은으로 된 소형 모형들을 만들어 팔았는데 사도 바오로가 이를 보고 '인간이 만든 우상들은 신이 될 수 없으며 숭배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데메트리우스는 작업장의 장인들에게 이 말을 전했고, 신전이 의미를 잃게 되면 아르테미스를 믿고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큰 화가 될 것으로 믿은 장인들은 '위대한 신은 에페소의 아르테미스다'라고 소리치며 원형극장까지 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자 이를 본 정치인들은 급히 모여 재판을 열고 사도 바오로는 도시에서 추방됐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천년동안 성지로 추앙받고 있다.
▲니케상 |
로마시대에 분수를 만든 이유는 물이 고이지 않게 순환시켜 살아있게 하려는 이유에서였다. 물이 안 썩게 하는 방편이 바로 분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 고백했다. 이를 '익투스'라고 하는데 희랍어로는 '물고기'란 뜻이다.
에페소는 아시아의 수도였고 회의 장소는 1400명을 수용했다. 이때 당시 '멧돼지'는 '풍요'를 상징했고, '불'은 '번영'을 상징했다. 바빌론의 성곽은 황소의 고환, 여성의 가슴을 조각해 놓았는데 황소를 열두 마리 잡으면 고환을 잘라 붙였다. 여자의 가슴은 한꺼번에 24명에게 수유하는 풍요로운 다산을 상징했다.
▲고대 7개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5월에는 아르테미스 여신 축제가 열렸는데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 7대 불가사의중 하나다. 둘레가 5m 60㎝이고 주랑이 133개나 된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상관을 덮고 지붕을 얹어 신전축제를 벌였고 우상을 숭배했다. 병원에는 지팡이와 뱀이 조각됐다. 지금도 앰뷸런스에는 뱀이 표시돼 있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병원의 수호신인 아스클레피온의 부인 하지네는 뱀이었다. 그래서 뱀 조각이 있는 유적지는 병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치가 있는 곳은 우물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숭배를 금지했기 때문에 무명의 순교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당시 남자들은 황제교육을 받았는데 황제교육이란 바로 전쟁을 경험시키는 것이었다. 엄마가 할 일은 18세까지 아이를 키우는 것이고, 아빠가 할 일은 바로 전쟁이었다.
▲사도 요한 이야기=이때 당시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원로원을 죽이고 폭정을 휘두르며 자기 신전 터를 만들어 참배하게 했다. 그래서 이를 우상숭배라며 거부하던 예수님의 12제자가 모두 순교했지만 사도 요한만 자연사했다. 황제는 사도 요한이 90세가 넘었을 때 원형극장의 끓는 기름 가마 안에 넣어도 요한이 편안해 하고 장미향이 나자 다시 꺼내서 파트모스로 유배를 보냈다. 요한은 대리석 채석장 파트모스에서 낮에는 채석하고 밤에는 요한 계시록을 썼다. 사도요한은 이 계시록에서 예수님은 빛이 아니고 주님의 자식이라고 썼다. 요한은 100세까지 장수했다고 전해진다.
▲ 화장실 유적 |
니케는 유일하게 날개가 있는 신으로 승리를 상징한다. 니케의 옷자락에서 나이키를 찾아 승리를 상징하게 됐다. 헤르메스는 발에 날개가 있는 신이다. 로마는 명예를 중시하는 나라였고, 건축물의 둥그런 기둥은 '주랑'이라고 한다. 은하수는 희랍어로 '밀키스'이다.
로마는 목욕 때문에 망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귀족들이 목욕탕을 즐겨 찾아 정보 입수 장소로 활용했다. 지금은 폐허가 된 유적지의 1층은 김나지움 체육관과 카페와 갤러리로 사용됐다.
셀수스 도서관은 부조가 아름다운 높이 23m, 길이 43m의 도서관이다. 이때 당시 지식인은 지식과 선행, 용기, 지혜를 갖춰야 했다. 아고라 시장터는 사방 110m에 주랑이 있고 지붕은 스토아였다.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는 좌관이 있고 무대벽인 스케네가 있었다. 바로 이 스케네에서 스크린이 파생됐다. 작은 기둥 무대는 오케스트라로 불렸고 연극의 신 디오니소스를 섬기며 연극을 즐겼다.
/터키 에베소=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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