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민 우송정보대 외래교수 |
한때 종교계에서 전개됐던 '내 탓이오'라는 단어가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일이 안되면 남 탓으로 돌리는 우리의 단점을 수정하고, 자기발전을 인정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가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신자들은 차랑 뒤편에 '내 탓이오' 라는 스티커를 유행처럼 붙이고 다니던 시절, 1984년 한국에 천주교가 정착한지 200주년을 맞이하여 교황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하던 시기에 모든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 자신을 반성하자는 의미에서, 라틴어로는 'mea culpa(메아 쿨파)' 영어로는 'my fault(내 탓이오)'를 전개했던 캠페인 중 하나다.
누구나 자기의 잘못이나 과오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잘못된 일이 발생하면 분명 잘못한 사람은 이유나 핑계를 대며 자신의 책임보다는 타인의 책임이나 다른 여건 탓으로 돌리게 되며 온통 타인의 잘못으로만 돌린다. 갈수록 치열해 지는 경쟁 속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이로 인해서 부서와 부서 간, 또는 상하 동료 간 불신을 낳게 하며, 더 나가서는 조직의 결속을 약화시키는 경우를 흔히 목격 할 수 있다. 기업 내에서 '내 탓이오'운동을 전개한다면 단합된 조직의 결속을 다져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시너지 효과와 생산성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또한 자신의 외국어 실력부족도 바쁜 업무 탓이고 컴퓨터를 사용 할 줄 모르는 것도 회사가 교육을 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고, 부진한 영업실적 또한 상사나 타부서의 업무 협조가 원활하지 못한 탓으로 돌린다. 분명히 잘못된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판매가 부진하면 판매를 잘못한 사람은 없고, 제품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핑계만 남는다. 그래서 제품이 나쁜 것은 구매팀에서 자재선정을 잘못해서 그렇고 구매팀에서는 자금팀으로 떠넘겨서 결재조건을 나쁘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며, 영업팀에서 수금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자금이 부족한 탓이라 한다. 이와 같이 핑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느 하나 책임이 분명한 곳이 없다.
이처럼 모든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다 보니 관계되는 다른 팀과 싸워서 꼭 이겨야 한다. 이 싸움에서 패배 한다면 모든 책임을 자기 팀이 져야하고 때에 따라서는 인사문제에 이르기까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떠넘기기 싸움을 토너먼트 식으로 하면 그래도 빠른 시일 내에 책임질 팀이 판명된다.
그러나 사안이 복잡하여 여러 팀이 연관되어 있으면 리그전 형태를 띠게 되어 싸워야 할 대상이 많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다.
이와 같이 모두가 타인 탓으로 돌린다면, 이 어려운 문제를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본인책임, 본인 탓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먼저 나서서 해결 하려는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이러한 일은 어느 한 기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 만연해 있는 이러한 풍토를 개선하고자 할 때 회사원은 물론이고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내 탓이오'하는 의식을 몸에 익혀서 생활한다면 우리의 사회는 서로가 믿고 신뢰하는 밝고 투명한 사회를 이루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나는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이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타인은 부족한 것이 많고 피해만 주는 존재인가?
자신을 반성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늘 남의 탓만 하며 살아가고 남의 탓을 많이 하는 사람치고 잘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의 탓만 하다 보니 자기의 반성할 일이 없어지고, 자기발전은 전혀 하지도 못한다. 보편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대표적 표현단어는 '덕분에'란 단어를 가장 많이 쓰고 실패한 사람들의 대표적 표현단어는 '때문에'란 단어를 가장 많이 쓴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탓이라도 남의 탓으로 책임을 떠 넘기고 회피하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광은 상사에게, 과실은 부하에게,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풍토가 정착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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