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동오 중부대 총장 |
파리와 관계된 어느 한 행동연구학자의 연구가 재미있다. 유리병 안에 파리와 꿀벌을 넣고 어두운 공간에서 병의 바닥 쪽으로 불빛을 비추었다. 그러자 꿀벌은 모두 유리병 바닥으로 모여 결국 병 밖으로 나오지 못해 죽게 되었는데, 파리는 모두 병 밖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꿀벌은 파리보다 지능이 훨씬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꿀벌은 빛을 인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빛의 방향이 밖의 방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파리는 그렇지 못하다. 파리는 수없이 병 안을 날고 기어 다니다가 우연히 병 입구에 다다라서 나온 것이다. 꿀벌보다 파리의 행태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는 더 유리한 셈인 것이다.
다산이 살던 시대나 우리가 살던 시대나 어려움은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그로인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파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은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비해 눈 위에 서리가 덮이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오면 이를 이겨낼 재간이 그리 많지 않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든 타인으로 인해 눈앞에 닥친 문제이든 간에 평범한 사람은 소수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에 비해 그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은 엄연한 현실일 것이다.
꿀벌은 파리보다 우수한 곤충이므로 인간 사회에 빗대면 우수한 능력을 지닌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꿀벌들이 병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 때문이다. 반면 파리는 그들에게 있는 능력이란 시도하고 또 시도해 보는 것밖에 없었다. 이 능력이 파리를 병 밖으로 탈출시키도록 만든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뛰어난 능력이 매번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변변치 못한 능력이라도 어려움을 타개하는데 쓰일 수 있을 것이다. 파리에게는 없고 꿀벌에게 있는 능력이 오히려 그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뛰어난 능력이라고 해서 반드시 유용한 법은 아닌 셈인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을 가리켜 88만원세대라 한다. 이는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인데, 이들을 위해 기성세대에서 뚜렷한 대안을 내놓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점을 보면, 다산의 시대에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죽은 자들이 파리로 환생한 것이나 우리의 시대에 어려움을 겪고 위기에 처한 88만원세대나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빈부격차나 실업은 다산의 시대나 우리의 시대나 모두 존재한다. 애석하게도 그 시대나 우리의 시대에 그를 타파할 대안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무섭다. 잘 변하지 않는, 고착된 생각은 우리의 습관이나 의식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기 마련이다. 꿀벌이 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 뛰어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닌 고정관념이 그에게 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하게 막았을 것이다. 반면 파리에게는 고정관념이 없었을 것이다. 파리가 한 행동은 시도에 시도를 거듭한 것이 다일 것이다. 시대도 기성세대도 고정관념에 빠져버린다면 88만원세대의 생활과 인생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될 것이고 88만원세대라고 수용해버린 젊은이에게도 그런 삶이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으면 이와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려면 다산의 글과 같은 풍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글 속에 있는 현실이 우리의 현실로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산의 글 속에 있는 파리와 같은 삶을 우리의 88만원세대가 살지 않도록 사회가, 정부가, 시대가 깨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그 억울한 다산의 파리와 같이 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젊은이에게 그러한 고통을 준 것은 바로 우리 시대이며 사회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듬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병 밖으로 탈출한 파리와 같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시도와 시도를 거듭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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