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용 대전성룡초 교감 |
선생님은 55세가 되던 해에 정보통신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셨다. 교육법전을 항상 옆에 끼고 살다시피 하셨고, 틈나는 대로 연수를 받으셨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넘쳤고, 해박한 지식으로 후배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교육 전문가셨다.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만물박사기도 하셨다. 너그럽고 인자하셨으며 누구나 다가설 수 있을 정도로 소통이 가능하셨기에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특히, 선생님의 동료와 제자 사랑은 지극했다. 하루는 메꽃을 꺾어 오셨다. 후배 교사들이 나팔꽃과 메꽃을 헷갈릴 수 있다며 교무실 칠판에 떡하니 붙여 놓으셨다. 해마다 봄철이 되면 화단에 목화씨를 뿌리셨다. 아이들이 목화꽃을 잘 모른다며 틈틈이 목화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셨다. 목화솜으로 여직원 결혼식 때 이불 만들어 주려 했는데 겨우 세 움큼뿐이라며 걱정하셨다. 필자가 인형 베개라도 만들어 주시라니까 껄껄껄 웃으셨다.
두주불사(斗酒辭)인 술 실력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밤새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다가 동동주를 곁들여도 이튿날 거뜬하셨다. 평소 테니스와 배구를 통해 다져진 체력과 약주 후에 꼭 들르시는 노래방 덕분이 아닌가 싶다. 취흥에 겨워 '황진이'를 구성지게 부르시며 어깨를 들썩이니, 눈치 보던 후배들도 분위기에 젖어 덩실덩실 춤을 따라 추게 된다. 댁으로 가시는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성룡초등학교는 44학급이라 교감이 둘이다. 불협화음을 우려했다. 기우였다. 교감 선생님은 13살 아래의 필자에게 많은 배려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필자가 교장자격연수를 받던 지난해 5월, “박 교감이 없으면 술자리에 가지 않겠다”며 사양하셨다는 소리를 동료로부터 전해 들었다. 감동 받았다. 선생님의 장모상 조문을 위해 완도에 갔던 지난해 11월, “박 교감은 직원들을 참 잘 챙기는 것 같아”라며, 필자의 손을 꼭 부여잡으셨다.
요즘은 딸이 둘이면 금메달이라고 한다. 딸이 먼저고 아들이 나중이면 은메달, 아들 다음에 딸이면 동메달, 아들만 둘이면 목(木)메달이란다. 선생님은 아들만 둘을 두셨으니 목메달이다. 금메달보다 더 값지다는 화목할 목(睦)인 목(睦)메달이다. 선생님은, 주말마다 경기도 오산에서 며느님과 손주가 내려온다며, 항상 토요일 오후 시간을 비워두신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따로 없다.
정년퇴직 후에는 3가지를 하시겠단다. 첫째가 지인들과 정당을 창당(?)하시는 일이다. 합당을 통해 지분까지 챙기시겠단다. 둘째가 '수산물 수거업'이다. 바다로 낚시하러 다니시겠단다. 필자가 동해·서해·남해 바다를 공짜로 사용하시라고 선심을 썼다. 셋째가 '유아영재기관'설립이다. 벌써 손주 명훈이가 가입했다며 활짝 웃으셨다. 교감 선생님의 농담에 교무실은 웃음꽃이 활짝 핀다.
오는 31일 41년 5개월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시는 우리 학교 정인권 교감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다. 교감 선생님은 언제나 동료들을 먼저 챙기셨다. 필자도 1년 6개월간 같이 근무하면서 많은 은혜를 입었다. 정년퇴임식 때 드리려고 틈틈이 촬영해 두었던 교감 선생님의 모습이 담긴 사진 폴더를 열었다. 그 중에서 100여 장을 추렸다. 주변 사람들도 값진 선물이 되겠다며 좋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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