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로서, 1887년 빈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빈, 예나, 취리히, 베를린 등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견하여 파동역학을 수립하는 등 물질의 파동이론과 양자역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1961년 작고하였다. 저서로는 『자연과 그리스인』, 『나의 세계관』 등 다수가 있다.
▲ 생명이란 무엇인가 |
70여 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은 오늘날의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생명에 관한 근원적 질문, 그리고 생물학, 물리학, 화학 등 과학의 통섭에 관한 효시가 되었고, 생명의 문제를 철학의 영역까지 확대함으로써 분자생물학과 뇌과학 등 여러 가지 학문을 태동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슈뢰딩거의 강연이 있은 지 50년 후인, 1993년 9월 로저 펜로즈, 스티븐 제임스 굴드, 제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데 모여 그의 주장이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그 논의의 결과물을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후 50년』이란 책으로 펴낸 것을 보더라도 이 책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가치 있는 논쟁거리를 제공했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유전자의 질서를 생명현상의 질서로 보았고, 모든 생명현상이 양자물리학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된 이후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의 발달로 유기체의 물질적 구조와 기능에 대해 많은 것이 밝혀지고 게놈의 분석이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생명의 현상, 즉 개체의 행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유기체는 끊임없이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얻어 행동을 하기 때문에 유전자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정신영역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의 저작은 실제로 DNA 발견과 이에 따른 분자생물학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물질계는 열역학 제2법칙, 즉 시스템은 내부의 무질서 또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을 피할 수 없는데, 유기체에서는 오히려 상당기간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생명복제현상의 핵심 메커니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생명현상 역시 물리법칙으로 해명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불어넣어줌으로써 생명현상을 분자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슈뢰딩거는 이 책에서 근대 철학의 인식론, 존재론, 윤리학에 대한 그의 견해를 과감히 밝힌다. 그는 자신의 몸이 객관의 일부이고, 타인들의 몸도 이 객관적인 세계의 일부이며 자신과 타인들 사이에 차별성이 없고 오히려 유사성이 있으므로 자신이 실재 세계의 일부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또한 세계가 우리의 감각과 지각과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계 그 자체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고 뇌 속에서 일어나는 특정 사건들이 있어야만 세계는 드러난다고 함으로써 주체가 인식하는 대상과 실제 대상이 구분되지 않는 양자론적 견해를 펼친다.
그는 양자물리학자로서 생명현상을 설명하고자 했고, 더 나아가 과학을 정신세계에까지 확대하여 철학의 영역까지 넘나들면서 과학의 정신 자체를 다루고 있다. 학문을 하는 자세는 끊임없이 의미있는 질문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주장조차도 스스로 논박을 하여 새로운 진리를 탐구해 나가는 과정임을 몸소 보여주고, 경계를 넘어 진리를 사유하는 그의 학문적 태도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본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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