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철] 생명을 향한 철학, 생물학을 낳았다

[강신철] 생명을 향한 철학, 생물학을 낳았다

70여년 된 과학의 고전… 분자생물학·뇌과학 등 태동에 큰 영향

  • 승인 2011-08-16 14:08
  • 신문게재 2011-08-17 12면
  • 강신철 백북스 운영위원장강신철 백북스 운영위원장
[백북스와 함께 읽는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

저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로서, 1887년 빈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빈, 예나, 취리히, 베를린 등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견하여 파동역학을 수립하는 등 물질의 파동이론과 양자역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1961년 작고하였다. 저서로는 『자연과 그리스인』, 『나의 세계관』 등 다수가 있다.

▲ 생명이란 무엇인가
▲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을 최초로 시도한 과학의 고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부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대중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서 생물학과 물리학을 넘나들면서 살아있는 유기체의 공간적 경계 안에서 일어나는 시간과 공간 속의 사건들을 물리학과 화학으로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2부 '정신과 물질'에서는 의식의 물리적 기초, 지식의 미래, 객관화의 원리, 과학과 종교, 감각의 신비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서술했다. 3부 '내 삶의 스케치'는 그의 생애를 통해 만났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와 그의 학문에 영향을 미친 일화들을 담았다.

70여 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은 오늘날의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생명에 관한 근원적 질문, 그리고 생물학, 물리학, 화학 등 과학의 통섭에 관한 효시가 되었고, 생명의 문제를 철학의 영역까지 확대함으로써 분자생물학과 뇌과학 등 여러 가지 학문을 태동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슈뢰딩거의 강연이 있은 지 50년 후인, 1993년 9월 로저 펜로즈, 스티븐 제임스 굴드, 제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데 모여 그의 주장이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그 논의의 결과물을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후 50년』이란 책으로 펴낸 것을 보더라도 이 책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가치 있는 논쟁거리를 제공했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유전자의 질서를 생명현상의 질서로 보았고, 모든 생명현상이 양자물리학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된 이후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의 발달로 유기체의 물질적 구조와 기능에 대해 많은 것이 밝혀지고 게놈의 분석이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생명의 현상, 즉 개체의 행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유기체는 끊임없이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얻어 행동을 하기 때문에 유전자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정신영역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의 저작은 실제로 DNA 발견과 이에 따른 분자생물학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물질계는 열역학 제2법칙, 즉 시스템은 내부의 무질서 또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을 피할 수 없는데, 유기체에서는 오히려 상당기간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생명복제현상의 핵심 메커니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생명현상 역시 물리법칙으로 해명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불어넣어줌으로써 생명현상을 분자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슈뢰딩거는 이 책에서 근대 철학의 인식론, 존재론, 윤리학에 대한 그의 견해를 과감히 밝힌다. 그는 자신의 몸이 객관의 일부이고, 타인들의 몸도 이 객관적인 세계의 일부이며 자신과 타인들 사이에 차별성이 없고 오히려 유사성이 있으므로 자신이 실재 세계의 일부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또한 세계가 우리의 감각과 지각과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계 그 자체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고 뇌 속에서 일어나는 특정 사건들이 있어야만 세계는 드러난다고 함으로써 주체가 인식하는 대상과 실제 대상이 구분되지 않는 양자론적 견해를 펼친다.

그는 양자물리학자로서 생명현상을 설명하고자 했고, 더 나아가 과학을 정신세계에까지 확대하여 철학의 영역까지 넘나들면서 과학의 정신 자체를 다루고 있다. 학문을 하는 자세는 끊임없이 의미있는 질문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주장조차도 스스로 논박을 하여 새로운 진리를 탐구해 나가는 과정임을 몸소 보여주고, 경계를 넘어 진리를 사유하는 그의 학문적 태도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본받을 만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제2수학문화관 설립 추진 곳곳 '파열음'
  3. 충청권 의대생 집단휴학 철회 복귀중… 증원 0명 이번주 '고비'
  4. 바로 이것이 한화의 응원이다! 새구장에서도 변함 없었던 홈개막전 응원전 요약
  5. 한화생명볼파크 한바퀴 돌며 추억 소환(슬픔주의) 볼파크 VS 이글스파크
  1.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2.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3.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4.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5.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