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주영 기업유통팀장 |
조선을 창건한 태조 때 간행된 '대명률직해'에는 '투서한 자는 교수형에 처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숙종은 투서를 보고 불태우지 않은 사람도 귀양을 보냈다. 조선 말기에는 요즘 대자보와 비슷한 벽서(壁書)나 괘서(掛書)가 난무했다. 엄격한 처벌 방침에도 투서는 근절되지 않고, 시대 상황에 따라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고 박정희 대통령도 1976년 5월 20일 청와대에서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에게 무기명(無記名), 가명(假名)투서는 수사를 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당시의 국정모토인 서정쇄신(庶政刷新)에 편승해 얼마나 많은 투서가 접수됐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무기명 또는 가명으로된 투서는 관계 수사기관에서 일체 접수도 취급도 하지 말라는 엄명이 내려졌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조직이 위축되며 구성원들간에 불협화음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투서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창궐하는 이면에는 어두운 군사독재 시대, 정보를 밀고(密告)하는 문화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고 박 대통령의 '엄명'은 다소 아이러니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투서 난무는 절대 권력자에게도 커다란 골칫거리였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 지역에서도 요즘, 대덕 특구내 정부 출연연 기관장 공모가 한창인데 '투서'를 둘러싸고 여러 사단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11곳을 합쳐 모두 21곳이 원장 공모를 완료했거나 진행 중이다. 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은 공모를 앞두고 있다. 투서가 난무할 만한 공간이 만들어지자, 투기꾼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각 출연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투서 작성자로 추정되는 '발원지'가 항상 얼굴을 맞보고 근무하던 직장 선후배나 동료라는 점이다.
투서 유형도 다양하다. 청와대와 총리실 관계자에 따르면 투서는 주로 우편을 통해 전달되고 있고 이따금 팩스를 통해 접수되기도 한다. 특구내 투서 사건은 조직 내부의 인사 불이익을 당한 쪽에서 제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A 출연연의 투서 내용을 보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식의 육하원칙까지 동원, 그럴싸 하게 포장돼 있다.
여자 관계, 향응 접대 내역이 실명과 함께 시간대 별로 너무 자세히 묘사돼 사정 당국도 혹하게 작성된다는 게 출연연 관계자의 설명이다. B 출연연에선 투서로 전도가 유망한 연구원이 사표를 내고 직장을 떠나야 했다. 당한 쪽에서도 가만 있지 않게 마련이다. 이런 구조가 결국은 조직내 불협화음을 가져오고 불신감을 부추기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럼 투서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일까. 역사와 흐름을 같이했던 것을 보면 투서는 사라질 수는 없는 듯 하다. 그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 지혜가 아닌가 싶다.
고발해야 할 일들이라면 법률에 보장된 고발제도를 이용하도록 하고, 의혹이 제기되면 그때 그때 진실을 밝혀내야 막가파식 투서는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부와 사정당국도 무기명 투서 자체를 민원으로 접수하지 말고, 관련 부처도 무기명 투서를 인사 참고 자료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투서관행은 상당 부분 사라질 것으로 본다. 이제 더 늦기전에 제도를 바꿔, 국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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