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주 아산 금곡초 교사 |
“이 나무뿌리를 잡으면 힘이 덜 들어요!”
황새의 가느다란 다리를 닮은 귀여운 아이들이 응원을 한다. 여린 힘이지만, 제법 힘이 들어 있는 손에 손을 얹으며 오르는 길에서 목 언저리까지 차오르는 이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우리 다음에 올라갈까?'
유월의 초록이 예쁜 첫 주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풀잎처럼 맑은 아이들 여럿이 재잘거리며 뒤따라온다. 오늘은 우리 학교 가까이에 있는 설화산에 등산을 하는 날이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가운데 첫 번째가 '선생님과 등산하기다. 오늘은 그 소원을 성취하는 날! 유월의 산은 참 아름답고 순수했다. 화사한 봄꽃이 떠난 자리에는 연둣빛 새순이 돋고, 조금씩 짙어지는 초록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투명하고 밝았다. 여기저기에서 얼굴을 내미는 신갈나무, 조팝나무, 생강나무의 은근한 매력이 손끝과 발끝에 묻어나는 듯 산을 향한 발길에는 행복이 하나 둘 피어올랐다. 길섶의 앙증맞은 풀꽃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을 닮았다고 느꼈다. 마침 한 아이가 맞장구를 친다.
“선생님, 우리 반이 풀꽃 교실이어서 참 좋아요. 이 풀꽃처럼요.”
“그래, 풀꽃은 작고 여리지만, 각각 제 빛깔과 향을 지녔단다. 너희들처럼 말이야. 그리고 화려하지도 않고, 장미와 같이 가시는 없지만, 여기저기 모아 피어나잖니? 그렇게 여럿이 어울리며 살았으면 좋겠어.”
설화산은 정상에 눈꽃처럼 하얀 꽃이 피어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정상 50미터'라는 표지가 앞에 어른거린다. 제법 완만한 등산로를 오르던 중 이제 남은 길은 바위와 나무 등걸이 절벽 아래 앙상하게 드러내는 길 뿐이다. 갑자기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얘들아, 잠시 쉬어 가자.”
싸온 물도 바닥이 나고 체력도 소진하니 더 이상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나…. 입안에서는 '그만 가자. 다음에 갈까?'라는 말이 맴돈다.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끌어당긴다.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니 어서 가자는 뜻이리라. 여리디 여린 풀잎 같은 손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앞서 가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돌멩이, 나뭇가지들을 치운다. 우리 선생님, 미끄러워 다치지 않아야 한다면서.
“그래, 정상을 향해 다시 힘을 내어볼까?”
“예~!” 거의 기어가는 자세로 바위, 나무뿌리를 부여잡고 올랐다. 내 한 몸 가누기 어려운 정상으로 향한 길에서 어린 제자들은 오히려 나를 위해 땅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끌어주고 힘을 써 준다. 속으로 부끄러운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렇게 하여 드디어 설화산 '정상'에 올랐다.
“야~호!” 함께 올라 온 스물 세 명의 제자들은 큰 소리로 신고식을 하고, 붉게 상기된 얼굴로 기쁨을 외쳤다. 저 아래로 유월의 초록이 넓게 드러누워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이것이 정상에서 맛 볼 수 있는 기쁨이리라!
“우리, 설화산에 있다는 '눈꽃'을 찾아볼까?” “…! 선생님, 바위만 보이고 꽃은 잘 안 보여요.” 전설의 눈꽃을 찾느라 눈을 더욱 동그랗게 떴다. 그렇다, 그날 정상에서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은 열 명이 겨우 발 디딜 정도로 좁은 공간, 절묘하게 엉켜있는 잿빛 바위,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였다.
“전설의 그 꽃이 오늘은 숨었나보다. 가을에 꼭 다시 오자.” 다음에는 집으로 귀가한 남은 일곱 명의 제자들을 더 챙겨 '풀꽃반 등산'을 해 보리라 마음먹는다. 그날 내 가슴속에서 확인한 '눈꽃'은 지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깨워준 어린 제자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아닐까 한다.
연일 언론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열대야, 폭우, 침수' 등의 악화된 자연 현상 보도에 지쳐가는 요즘이다. 누가 사소한 말이라도 잘못할 때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메마른 때에 '관용은 교육의 최고 덕목'이라 말했던 헬렌 켈러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그날의 체험은 귀한 비타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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