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삼용]변치 않는 그 무엇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우삼용]변치 않는 그 무엇

[사이언스칼럼]우삼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기반표준본부장

  • 승인 2011-08-01 14:09
  • 신문게재 2011-08-02 21면
  • 우삼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기반표준본부장우삼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기반표준본부장
▲ 우삼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기반표준본부장
▲ 우삼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기반표준본부장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어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조선 중기의 대시인인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에 나오는 구절로 돌을 벗에 비유하여 노래한 부분이다. 만일 이 세상에 '변치 않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질량의 기준으로서 적당하다. 올해 1월, 영국 런던에 있는 왕립학회(Royal Society)에서는 단위의 새로운 정의를 위한 국제 토론회를 개최했다.

필자도 본 학회에 참석하였는데 궂은 비가 간간이 내리는 음산한 날씨 가운데도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국제단위 제정에 관한 발표와 토론을 했다. 이틀 간 계속된 토론회에서 가장 큰 이슈는 질량 기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만드는 것이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질량의 기준은 프랑스 국제도량형국(BIPM)에 보관되어 있는 국제킬로그램원기다.

이 원기는 1879년 제작된 것으로 직경과 높이가 모두 약 39㎜인 원기둥 모양의 물체로 재질은 백금과 이리듐이 9 대 1의 비율로 섞여 있다. 아울러 이와 똑 같이 생긴 여러 개의 복사판 질량원기를 다수 만들어 미터 조약에 가입한 여러 나라들에게 나누어 주어 각 나라가 질량 1 ㎏을 똑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작 후 100 년이 넘게 지난 지금, 이 국제킬로그램원기는 곤란에 처해 있다. 그것은 복사판 질량원기와 비교한 결과 국제킬로그램원기의 질량이 조금씩 변하는 것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변치 않기를 기원하며 3중 용기 속에 잘 보관해 왔건만 기대와 달리 그 무게가 점차 변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지구상에는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없을까? 지금 선진 측정표준기관에서는 새로운 질량 기준으로 삼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유력하게 연구되고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코일에 발생하는 전자기력을 이용하여 국제킬로그램원기의 무게와 일치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은 어느 실험실에서나 구현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전압, 전류, 코일이동속도, 중력 등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해 실현이 쉽지 않다. 두 번째 방법은 실리콘 공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실리콘은 합금인 킬로그램원기와는 달리 원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잘 배열되어 있어 그 내부의 원자수를 정확히 구할 수 있으면, 원자량에 대응되는 원자수를 정할 수 있고 이를 새로운 질량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실리콘 공 1㎏은 지름이 94㎜에 달하고 이 안에 들어 있는 실리콘 원자수를 재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이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측정결과가 서로 일치하지 않고 있다. 아직 그 원인을 알 수 없어 과학자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 마치 시계가 한 개만 있을 경우 시간을 알 수 있지만, 시계가 두 개 있고 그 둘이 서로 다르면 몇 시 인지 확신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언젠가는 이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지만 마음은 조급하다.

원래 질량의 단위인 킬로그램과 길이의 단위인 미터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났다. 변치 않는 그 무엇을 찾아 '달고 측정하는 기준(wight and measure)'으로 삼으려는 노력의 결과, 믿음직한 지구를 길이의 기준으로, 물을 질량의 기준으로 처음에 선택하였다. 즉 프랑스 파리를 지나는 지구 자오선의 4000 만분의 1을 1m로 정의하고, 물 1를 질량 1㎏으로 정의한 것이다. 하지만 보다 신뢰성 있고 변하지 않는 기준을 찾아 헤맨 끝에, 길이의 경우 물리기본상수인 빛의 속도를 '변치 않는 그 무엇'으로 하게 되었다. 하지만 질량은 아직 '변치 않는 그 무엇'을 찾지 못하고 불완전한 백금-이리듐 합금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올해 10월이면 프랑스의 국제도량형국에서는 국제도량형총회(CGPM)가 열린다. 아직까지 '변치 않는 그 무엇'을 찾아 헤매는 불쌍한 질량의 단위 킬로그램을 안착시켜 줄 희소식을 기대해 본다. 1975년 미터조약 100주년 기념식에서 국제도량형국 국장은 킬로그램을 '변치 않는 그 무엇'으로 재정의 하는 것이야 말로 단위의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세상의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꿈의 세계지만, 단위의 유토피아는 측정표준기관의 실험실에 있는 현실의 세계다. 우리 모두 못 다한 '변치 않는 그 무엇'을 찾아 단위의 유토피아를 실현해 보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경기 프리미엄버스 P9603번 운행개시
  2. 충북·제주만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세… 서울 19주 만에 하락
  3. [기획] 의정부시, 우리동네 정책로드맵 ‘장암동편’
  4. 유성복합터미널 3개사 공동운영체 출범…터미널·정류소 흡수·통합 본격화
  5. 국립한밭대 RISE 사업단 '지역사회상생협의체' 간담회
  1. 충남대, 충청권역 장애 대학생 기업 탐방 프로그램 개최
  2. 첫 대전시청사 복원활용 탄력 붙는다
  3. 누리호 4차 발사 D-4… 국민 성공기원 분위기 고조
  4. 충남도 청렴 파트너 '제8기 도민감사관' 출범
  5. '세종시=행정수도' 진원지, 국가상징구역...공모작 살펴보니

헤드라인 뉴스


다시 만날, 첫 대전시청사… 복원‧보수설계 탄력 붙는다

다시 만날, 첫 대전시청사… 복원‧보수설계 탄력 붙는다

민선 8기 대전시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복원·활용 프로젝트인 첫 대전시청사(옛 대전부청사)의 복원·보수 설계가 본격 착수된다. 23일 대전시에 따르면 시는 첫 대전시청사의 설계용역 제안 공모 심사에서 '시공회당(時空會堂, 시간의 흔적을 공간으로 빚다)'로 당선된 ㈜아인그룹건축사무소·제이아이건축사사무소(공동응모)와 계약을 체결했다. '시공회당'은 섬세한 보존 전략과 함께 현재와 미래의 활용 가치를 높이는 계획, 공간 분석 및 원형 복원을 위한 기술적 검토의 완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제이아이건축사사무소의 김지현 소장은 프랑스..

안전상식 대표주자를 가려라… 재미난 퀴즈 풀며, 치열한 경쟁 `안전의식 UP`
안전상식 대표주자를 가려라… 재미난 퀴즈 풀며, 치열한 경쟁 '안전의식 UP'

충남 안전골든벨 왕중왕전을 향한 홍성군 예선전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홍성군과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홍성교육지원청, 홍성경찰서·소방서가 후원한 '2025년 제1회 홍성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20일 홍성 홍주문화체육센터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안전에 취약한 어린이들이 안전 상식을 재밌는 퀴즈로 풀며 다양한 안전사고 유형을 학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205명의 홍성지역 초등학생들이 대회에 참가해 골든벨을 향한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사회자는 "안전지식엔 연령이 없다"며 "다른 지역에선 저학년이 골든벨을 울린 적도 있다며" 긴장한..

누리호 4차 발사 D-4… 국민 성공기원 분위기 고조
누리호 4차 발사 D-4… 국민 성공기원 분위기 고조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4차 발사가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민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주말부터 전국에서 누리호 관련 행사가 진행되며 4차 발사 성공을 기원하는 분위기가 고양되고 있다. 23일 우주항공청·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27일 오전 12시 54분에서 1시 14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서 누리호 4차 발사가 예정돼 있다. 발사 예비 기간은 이날부터 12월 4일까지며 이 기간 중 누리호 4차 발사가 진행된다. 이번 발사는 기존과 달리 늦은 시간 진행된다. 주탑재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기의 궤도 진입을 고려한 시간이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