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르도바 소재 메스키타(사원) 원주의 숲이라 불리는 내부 모습. |
얼마 전 미국 문명사학자 월 듀런트가 1만년의 인류문명사를 무려 반세기에 걸쳐 쓴 문명이야기라는 책이 나왔다는 신간 안내를 보았다.
1927년부터 매일 8시간에서 14시간을 자료조사와 집필을 통해 고대 인류 문명의 기원에서부터 1930년대 인도, 중국, 일본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역사를 11권으로 정리했다고 신간은 소개하고 있었다.
월 듀런트는 필자의 대학시절 그가 쓴 철학이야기로 기억되는 인물인데 그가 문명사학자인 줄은 이번에 알았으며 반세기에 걸쳐 1만년에 걸친 인류문명의 거대한 역사를 기술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아직 그 책을 접해보지는 못했으나 그가 서양문명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또 무엇보다 아랍문명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듀런트는 이 책에서 문명은 죽지않고 단지 이동할 뿐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코르도바가 과연 그러했다.
이슬람문명과 기독교문명이 공존하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이슬람도시인 코르도바에는 현지시간 6월 13일 오후1시가 돼서야 도착했다.
피카소가 태어난 말라가에서 오전8시40분에 서둘러 코르도바로 향했으나 4시간을 지나서야 이곳에 도착했다.
중국성이라는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조금 걸어서 '원주의 숲'이라고 불리는 메스키타로 향했다.
역시 시내의 중심가에는 큰 규모의 공원이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으며 거리는 크게 붐비지 않았다.
그런데 거리에 무슨 깃발들이 가로등에 걸려있어 알아보았더니 코르도바가 2016년 유럽 문화의 수도로 선정돼 이를 기념하는 깃발이라고 들려주었다.
유럽은 자기들끼리 문화의 수도라는 것을 선정해 이를 널리 알리는 행사를 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 코르도바 대주교 성당으로 쓰이고 있는 메스키타(사원)의 천장에 새겨진 조각과 문양. |
잠시 이베리아반도에 이슬람세력이 들어오게 된 연원을 살펴보면 611년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해 그의 교도가 된 세력들이 동쪽으로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북쪽으로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서쪽으로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까지 그 세력을 넓히면서 먼저 지금의 스페인 남부지방인 안달루시아지역부터 정복하기 시작했다.
안달루시아지방은 북아프리카의 황량한 사막지대에 비할 때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과도 같은 땅이었다.
이슬람 세력은 이곳을 '알 안달루스'라고 불렀다 한다.
1492년 레콩키스타(기독교세력의 국토회복운동)로 그라나다의 나사리왕조가 물러나면서 스페인에서의 이슬람세력이 사라지기까지 약800년의 세월은 스페인에 이슬람문명을 강하게 남겼다.
그 이슬람문명의 흔적이 많은 대표적인 도시가 코르도바, 세비야, 그라나다인데 코르도바는 10세기경 이슬람왕국 알 안달루스의 수도로 인구만도 50만 명(또는 100만 명이라는 주장도 있다)을 자랑하는 스페인 최대의 이슬람도시 중 하나였다.
그 대표적 유적이 메스키타로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이슬람사원이다.
필자는 이번 여행에서 이슬람교와 새롭게 만나는 계기가 주어졌다.
카테드랄과 함께 도처에 이슬람사원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모로코의 이슬람사원도 하나같이 예술적 아름다움과 종교적 경건함을 불러일으켰지만, 코르도바 메스키타(Mezquita)만큼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모스크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손과 몸을 씻는 시설이 있어 몸을 청결히 한 후 모스크내부로 향했다. (여행당시 스페인의 기온은 30도를 넘어 몹시 무더웠다)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정말 원주기둥의 숲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대리석과 붉은 벽돌로 된 아치가 한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오는 그 누구라도 알라신에 대한 경외심이 저절로 생겨날 것처럼 느껴졌다.
그 기둥과 벽 천장에 새겨진 조각과 문양은 그저 예술이라는 말 이외의 표현을 쓰기가 어려울 만큼 현란했다.
1000년 전 이 같은 모스크를 세울 수 있었던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곳에서 산 책 코르도바 인 포커스(영문판)에 따르면 이 모스크는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완성됐다.
첫 시작은 785년 아브드-라흐만1세 때 였고 그 후 833년 아브드-라흐만2세와 945년 아브드-라흐만3세를 거치면서 보완됐다.
▲ 공예가 박영선 作 '해요바라기' |
특히 알-하칸2세는 40만권의 장서를 지닌 도서를 소유할 만큼 그 당시 가장 지식이 풍부한 현자 중 한사람이었다고 소개했다.
이 책을 보면서 비로소 메스키타가 왜 이처럼 아름답고 정교하며 이슬람문명의 경건함을 불러일으키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마디로 정치·경제의 융성함에 힘입은 종교와 지식, 문화와 예술의 융합이었다.
앞서 말한 왕들은 지중해의 모든 문명을 이곳에 집약시켜 놓았으며 융성기의 코르도바는 상층계급의 저택이 5만호, 서민층집이 10만호, 모스코가 700개, 병원 50개, 상점 8만개, 대학 등 교육기관이 17개, 도서관이 70개에 달했다고 하니 가히 코르도바의 이슬람문명의 번영을 짐작케 된다. (이강혁저, 스페인역사 100장면)
밤에는 가로등까지 켜졌다고 하니 당시 도시의 번영과 문명의 화려함은 아마도 유럽의 여타 다른 지역을 압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코르도바 대주교 성당으로 쓰이고 있는 메스키타가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모스크 내부의 아치를 비롯한 벽장식 등을 그대로 살린 채 가톨릭성당으로 개조했다는 점이다.
가이드말로는 전체 건물의 10%를 십자군이 성당으로 개조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메스키타가 너무 아름다워 파괴하기 어렵지 않았나 추측해보기도 했다.
코르도바는 로마유적도 많은데 로마시대에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4~65)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일정에 쫓겨 메스키타 이외의 여러 지역을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걸었던 거리가 최소 400~500년 전 조성된 거리란 설명을 들으면서 과연 역사와 문화의 도시라는 것을 실감했다.
알라신을 경배하던 이슬람사람들은 가고 없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메스키타를 비롯한 유적들은 그대로 남아 그 당시의 놀라운 기술력과 탁월한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당시의 침략자들로 인해 오늘의 스페인이 먹고 산다는 사실에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에 빠졌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은인이 되는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 인간사는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서둘러 그라나다로 가는 버스 안에서 코르도바에 머무는 시간이 적음을 한탄하면서 아쉬움은 코르도바에서 산 안내책자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 /글=조성남·사진=황길연 중구문화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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