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미국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은 20세기 이데올로기 충돌에 의한 전쟁의 종말에 이어 21세기에는 문명 충돌에 의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을 했는데, 참으로 뛰어난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9ㆍ11테러 때 미국이 아랍 테러 집단들에 대해 전쟁선포를 했으며, 얼마 전 미국이 9·11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암살하자 알카에다가 복수하기 위해 벼르고 있다고 하니 끝없이 반복되는 문명 충돌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노르웨이 사건도 브레이빅이라는 극우주의자의 소행인데, 유럽의 극우주의자들은 아랍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매우 크다고 한다. 유럽은 오랫동안 노동력의 부족으로 아랍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였는데, 최근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지자 일자리 문제 등으로 이들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급기야는 다문화주의에 맞선 테러를 공공연히 일으켜 온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어 '제노포비아'(Xenophobia)라는 이른바 '외국인혐오증'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프랑스 의회에서는 아랍여성의 몸전체를 감싸는 의상인 브루카를 입지 못하도록하는 '브루카 금지법'을 통과시켜 큰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 아시아인들도 피해를 입기도 하는데, 유럽에서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이유없이 구타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외국인 수가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는 126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아서 온 외국인 비율이 전체 외국인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며, 동남아 지역에서 결혼이민을 온 외국 여성들도 많다. 또 각 대학마다 한국으로 공부하러 온 유학생의 수도 최근 몇 년 사이 엄청난 숫자로 늘어났다.
우리 대학 역시 500여 명에 이르는 유학생들이 있어서 캠퍼스 내에서 중국어, 일본어 듣기가 어렵지 않다. 또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어서 아기를 데리고 한국어를 공부하러 오는 외국 여성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이제 다문화사회로 들어서고 있다고 하는데, 적어도 캠퍼스에서 만큼은 바로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도 다문화사회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결혼이민여성들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이들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또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단일민족을 긍지로 교육받아 왔기에 이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원인이 될 것이다.
얼마 전 우리 대학에서는 국립국제교육원의 후원으로 22개국 60명의 학생을 초청하여 10박 11일간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로 남미,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우리나라와 크게 왕래가 없는 국가의 학생들을 초정한 것인데, 그야말로 백인, 흑인, 황인종이 두루 섞인 다국적, 다문화적인 행사였다. 서울에 집합한 후 다음 날 바로 우리 대학으로 내려왔는데, 그새 모두 친구가 되어 대학의 한 클래스처럼 생활하는 것이었다.
이 학생들을 보며 떠올린 것이 '지구촌'이라는 말이었다. 지구 전체가 한 마을이라는 이 단어는 언제부터 쓰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일상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우주에서 보면 티끌같이 작은 이 행성에서 인종이 다르니, 문화가 다르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지구를 하나의 국가, 마을로 본다면 이데올로기의 충돌이니, 문명의 충돌이니 하는 말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부터 다양한 인종이 한데 어울려 사는 다문화 환경에 대한 이해를 어린 아이들의 교육에서부터 실시할 필요가 있다. 그들과 함께 공존, 상생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미래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는 사실을 온국민이 일깨우도록 해야 한다. 이번 노르웨이의 대학살을 보며 '지구촌'이라는 말의 중요성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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