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권 법무법인 내일 변호사 |
PLUS, ALDI, DM과 같은 중소규모의 마트가 주택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데, 독일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가서 생필품을 구입한다. 독일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러한 마트는 우리나라의 동네 슈퍼마켓보다는 크고 이마트나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트보다는 작다. 하지만 이 마트 안에는 주방용품, 주거용품, 농축산물, 수산물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웬만한 소비재를 다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SSM에 비견될 만하다.
독일의 마트는 독일인들의 독특한 생활문화를 반영해 주는 하나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독일의 마트는 우리의 동네 슈퍼마켓처럼 너무 작지 않아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효과를 누릴 수 있으면서도, 대형마트처럼 너무 크지도 않아서 효율적인 소비를 기할 수 있다. 적정한 가격에 필요한 만큼만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특히 이들 마트가 도심에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고도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여 이들 마트에 들를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생필품을 구입함에 있어 소요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녹색가게의 역할을 해준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대부분은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값을 치르는 것도 아주 특이하게 보였다. 자신이 구매할 물건 목록을 미리 생각하고 그에 맞추어 현금을 준비해서 물건을 구매한다. 주머니에서 잔돈을 꺼내어 1센트까지 세면서 물건대금을 치르는 모습에서 알뜰한 독일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승용차를 이용하여 대형마트에서 대량 구매를 하는 행태는 유럽식이 아닌 미국식 소비문화다. 미국은 땅이 넓고 도로가 아주 잘 닦여져 있으며 기름값도 싼 편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집에서 몇 십 킬로미터씩 떨어진 대형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때로는 필요 이상의 소비를 한다. 대금결제도 현금보다는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하는 편이 많다. 이러한 소비문화의 이면에는 자동차 중심의 교통정책이 있다.
1920년대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축적한 부를 이용하여 당시 도시를 누비고 있었던 전차를 운영하는 전자회사의 주식을 모두 사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동차를 팔아 번 돈으로 전차회사의 주식을 모두 폐기하였고, 아울러 그들은 막대한 자금으로 정부에 도로를 확충하도록 로비를 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은 자동차 중심의 석유 과소비형 소비문화국가가 되었다. 미국인들이 소비하는 채소 하나, 과일 하나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 숨겨져 있고, 대형마트의 저렴한 가격에 불필요한 대량 소비의 유혹 또한 숨겨져 있는 것이다.
반면에 독일은 상대적으로 땅이 좁고 인구도 밀집되어 있으며, 오래된 시가지도 많아, 독일인들은 미국식 소비문화를 지양하고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면서도 효율적인 중소형 마트에서 소비하는 문화를 창출하였다. 독일식 합리주의가 소비문화에도 그대로 표현된 것이다.
좁은 땅이나 많은 인구 등 우리의 형편은 미국보다는 독일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도시를 만들면 일단 길을 넓게 하고, 교통체제도 전차나 자전거 보다는 승용차 위주로 하고, 그런 다음 대형마트를 입주시켜 시민들이 잘 닦여진 대로를 따라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대량소비의 블랙홀인 대형마트로 향하게 하고 있다. 미국과 다른 환경아래서 에너지 과소비형의 미국식 소비문화를 추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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