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주 부여군농민회 정책실장 |
농식품부는 최근 쌀 가격을 잡기 위해 올 겨울에 필요한 사회복지 및 군 공급용 쌀을 포함해 2010년산 정부 비축쌀을 모두 시중에 푸는 강수를 뒀다. 정부가 예상한 10월말 기준 쌀 재고량이 88만t으로 적정 비축량 72만t보다는 많은 양이지만 실제 먹을 수 있는 쌀은 거의 다 풀려 가공용으로 쓸 수밖에 없는 묵은 쌀만 남은 것이다. 대북지원을 꾸준히 했던 지난 정부에도 100만t 수준의 재고량을 유지했었는데, 한 해 흉년이라고 나라의 곳간이 비었다.
올해도 벼 재배면적 4.1% 감소, 불량 정부보급종자 파동에 날씨까지 궂어 흉년 조짐이 보이는데 지금 정부의 농업 담당자인 농식품부 고위관료가 내놓는 답변, “수입쌀도 소비가 많이 늘고 있고 신곡으로 충당하던 수요를 수입쌀로 대체하면 되는 것”. 우리나라 농식품부 관료인지, 미국 농업 걱정하는 미국관료인지, 수입쌀 대행업체 직원인지 헛갈리기만 한다.
수입쌀을 싼 가격에 계속 풀고 있다. 농식품부는 쌀값을 안정시킨다며 5월 12일 수입쌀 가격을 대폭 낮춰 판매한 이후, 2차로 지난 4일 수입쌀 가격을 20% 이상 낮춰 판매하고 있다. 미국쌀의 경우 5월 이전에 80㎏당 10만8000원이었으나 4일 이후엔 6만4000원으로 40.7% 낮아지고, 중국산은 10만 5600원에서 6만원으로 43.2% 떨어뜨렸다.
지금 국내 쌀값은 어떤가? 산지 쌀값(80㎏)은 6월25일 기준 15만4748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1% 올랐다. 하지만 이 가격은 2008년 산지 평균가격(16만2312원)보다 못한 수준이다. 농민을 위해야 할 농식품부가 '공급 부족으로 자연발생한 쌀값 회복 요인'을 물가안정 명분으로 앞장서서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농식품부는 내년 농업예산을 축소한다, 농업보조금 6000억원 감축. 갈수록 가관이다. '나랏돈' 의존형 농업의 자생력을 기르고 정책자금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농업보조금 6000억원을 감축한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언젠가 언급했던 “뉴질랜드에서 농업보조를 폐지했더니 농업경쟁력과 자생력이 회복됐다”는 말을 실천하려는 것이리라. 농가당 100만원 상당의 보조금(농가소득 대비 약 5%)은 전체 농업생산 대비 4.6%로 OECD 평균 15.5%의 3분의 1수준도 되지 않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국가예산 대비 농업예산이 매년 1%포인트씩 떨어지고, 농림예산 요구안이 전년도 예산보다 줄어드는 상식 이하의 상황은 현 정부가 농업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올해 지금까지 온 눈ㆍ비의 양이 예년의 평균 총량을 넘겨버렸고 기상관측소가 생긴 이래 하루 최고 강수량도 열흘 전의 비로 기록이 경신 되었다고 한다. 산에서 내려온 흙더미 때문에 운전하기 힘들다는 이웃의 투덜거림이나 해가 나오지 않아 빨래하기가 어렵다는 도시 사는 친구의 불만은 올 가을 예상되는 침울해질 들녘을 생각하면 새 발의 피도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쌀값은 농민값이다. 정부와 농식품부는 물가를 잡는다며 우리 농업의 근간인 쌀을 담보로 흥정하고 있는 듯하다. 거기다 누가봐도 비상식적인 내년도 농업예산의 6000억원 감축, 해도해도 너무한다. 농업문제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문제인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임에도 최근 정부와 농식품부의 행태를 봤을 때 우리 민족과 국가의 장래에 대한 고민이 쌀 한 톨 만큼이나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쌀값은 농민값이다.' 이것이 쌀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시선이고 쌀문제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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