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정 충남도지사 |
그래서 정치가와 공직자라면 늘 헌법 책을 가까이 하고 상고해야한다. 도지사로서 필자도 헌법 책을 늘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헌법전문을 읽어보거나 헌법에서 우리에게 명령한 민주주의에 대해서 생각을 하곤 한다.
1948년 헌법 제정 이래로 우리 국민은 헌법정신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불의한 독재정권의 헌법유린에 의연히 맞섰고, 마침내 87년 6월 훼손되었던 헌법을 국민의 헌법으로 회복시켰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이 지키고자했던 헌법 정신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우리 헌법의 내용적 구성은 바로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주권재민의 원칙이 확립되는 것이다. 첫번째 출발은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것이 자리 잡게 되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제 군대의 총·칼로 대통령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대통령이라는 이름의 임금이 군림하는 사회도 종식됐다. 국민의 정부로 인해 여야간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져 명실상부한 선거제도가 확립되었고,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법위에 군림하던 특권의 청산도 이뤄졌다. 마침내 1단계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된 것이다.
1단계 민주주의의 완성은 2단계 민주주의의 출발을 의미한다. 2단계 민주주의의 핵심은 대화와 타협, 참여와 분권의 원리가 지켜지는 더 좋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일이다.
지난 20세기 우리 역사는 이념과 지역에 갇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보냈다. 이로 인해 선악의 관점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절대주의적 가치관만을 고수하려 하는 관행이 쌓이게 되었다. 이러한 낡은 태도로는 결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없다.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너도 옳고 나도 옳을 수 있고, 나도 그를 수 있고 너도 그를 수 있다는 상대주의적 가치관이 요구된다. 또한 다양성을 끊임없이 인정하려고 하는 열린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통해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2단계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핵심은 '갑을 민주주의'의 청산이다. 시민들의 참여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 할 수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자세로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할 때, 민주주의는 한층 성숙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참여를 위해서는 투명한 행정과 정보공유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20세기적 낡은 상식을 버리고, 시민이 함께 해야 더 좋은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대화와 타협, 참여를 완성시키는 것이 바로 다수결주의다. 다수결주의는 단순히 수적 우위에 의한 힘의 논리가 아니다. 다수결주의가 되려면 소수파도 존중받아야 하고, 다수결의 결정력도 존중받아야 한다. 따라서 다수결주의가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수파의 주장이 사회의 합리적 상식에 기초해야 한다. 또한 언론의 자유, 공정 선거, 소수파의 자유로운 의견개진이 가능해야 한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은 200~300년의 역사를 통해 이러한 다수결의 정신을 정착시켜왔다. 우리도 이러한 정신으로 약자를 포용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하고, 승자에게 승복할 수도 있어야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국민을 이롭게 하고, 국민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헌법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다. '강한 자 바르게 하고, 약한 자에게 힘 주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신이며, 올바른 법치다. 이는 또한 명실상부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뜻 깊은 제헌절을 맞아 우리 국민 모두가 헌법 속에 깃든 민주주의의 정신과 가치를 다시 한 번 상고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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