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수풍경(동방견문록을 읽고) |
하지만, 이 책은 신비한 동양에 대한 다양한 기술로 유럽사회에 커다란 흥미를 일으킨 반면, 일밀리오네라는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졌을 정도로 허풍과 거짓말로 가득 찬 책이라는 비난도 함께 받았다.
이응노 화백은 1980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대한 책을 집필했던 작가가 삽화를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주제로 80여 점에 이르는 풍경작품을 남기게 된다.
이는 이응노 화백이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은 동방견문록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고 미지의 세계들을 마치 자신이 여행이라도 한 듯 생동감 넘치는 창작의 욕구를 펼쳐냈다.
'마르코 폴로'와 '이응노 화백'은 존재했던 시간을 다르지만 공통된 탐구심과 모험심, 도전정신이 닮았다.
대전이응노미술관은 13일부터 10월 30일까지 '이응노와 마르코 폴로의 시선' 전시를 연다.
▲ 산수풍경(동방견문록을 읽고) |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대한 책을 집필했던 작가가 프랑스에 체류 중이던 고암에게 삽화를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제작된 이 시리즈는 집필가의 사정상 책이 출판되지 못하면서 책과 함께 세상에 선보일 기회를 잃었다가 이번에 최초로 대중에게 선보인다.
동방견문록을 접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탄생 시킨 고암의 작품안에는 동·서양 시선의 교차가 자아낸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의 작품은 눈 앞에 보여지는 현상에 국한되기 보다는 그 형상의 속성과 이치에 접근하고 외형보다는 내용적인 면을 강조한 동양화의 풍경묘사 방식에 의해 그려졌다.
직접 보고 느낀 경치를 그린 것이 아닐지라도 다양한 그림 속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관점과 이야기로 탄생한 작품임을 느낄 수 있다.
고암은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기법을 사용했다.
▲이동시점=사물을 고정된 시점으로 바라보지 않고 걸으면서 생각, 대상의 각 방면을 관찰하며 추후 기억에 의거해 재현했다.
형태와 빛, 색 등의 객관적인 상황을 추구하는 고정 시점의 서양화와는 차이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암은 산 속을 거닐며 경치를 즐길 때 변화하는 봉우리의 모습과 산 속에서 만나는 계곡, 작은 암자, 숲 속의 마을 등 산의 면면을 모두 보려하는 이동시점의 묘사방법에 따라 풍경을 고안했던 것이다.
▲외형적인 것보다 내면을 중요시=고암은 동방견문록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관찰할 때 전면적인 관찰을 강조하는 동시에 느낌이 크고 깊으며 생동하는 면을 선택했다.
정신이 깃들어 있는 부분은 분명하게 공들여 표현하고 중요치 않은 부분은 간략, 생략해 여백으로 처리했다.
▲형상을 기억한 묘사=동방견문록을 직접 읽지 않고 책의 내용을 들은 뒤에 내용을 기억하고 형상을 떠올리는 식으로 고암의 작품이 완성됐다.
기억 속의 형상들이 대상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임으로 머릿속에서 종합되고 개괄되어 미세한 부분들이 제거된 상태에서 관점에 따라 생동감있게 표현된 것이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고암의 대표적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아기자기한 소품의 느낌을 주기도하며 보는 이들에게 고암의 이미지를 새롭게 환기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금까지 세상에 공개하지 않다가 이번에 최초로 대중에게 선보인다는 의의를 지니는 작품들로 구성된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하다.
신비로운 동양세계에 대한 중세 유럽인의 시선이 담긴 책을 접하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탄생 시킨 고암의 재기발랄하고 생동감 넘치는 예술혼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구에서의 오랜 경험과 각종 다양한 미술사조의 영향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간 고암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박수영 기자 sy8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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