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종욱 한국화학연구원ㆍ 계면화학공정연구팀 책임연구원 |
대부분의 불소 포함 고분자들은 탄소와 불소 원자 간의 강한 결합력과 특이한 결합구조로 인해 열과 화학물질에 대한 안정성이 매우 우수한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뛰어난 내구성이 요구되는 경우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가격이 상당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여타 범용 고분자 재료로는 대체가 불가능한 물성이 많기 때문에 사용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프라이팬 표면 코팅이나 고어텍스의 원료로 사용되어 일반인에게도 친숙하며, 테플론이라는 상품명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는 사불화에틸렌 수지를 비롯하여 다양한 제품들이 개발되어 있다. 사실 불소 포함 고분자들은 상당히 오래 전에 이미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테플론만 하더라도 1938년 미국 듀폰사의 로이 플런킷이 최초로 합성하였으며 현재 수요가 있는 대부분의 불소 포함 고분자들은 1960년대 이전에 개발된 제품들이다. 이후에 진행된 연구들이라는 것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보다는 기존의 제품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각종 화학공정들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개선하는 정도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몇 세대 전 개발되어 조용히 시장을 형성하고 있던 불소 포함 고분자들이 최근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 장치의 부품, 오랜 기간 성능이 보장되는 도료 정도로 제한되어 왔던 응용 분야가 급격히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태양전지 모듈 제작에 사용되는 배면시트, 연료전지에 사용되는 이온교환막, 2차전지 양극제조를 위한 바인더 등 대체에너지 관련 첨단 산업에서부터 수처리용 분리막의 제조에 이르기까지 불소 포함 고분자들이 핵심 소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분야는 다양하다.
오래 전 불소 포함 고분자들을 최초로 개발하던 연구자들이 현재 수요가 있는 분야의 응용까지 고려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불소 포함 고분자들이 새로 개발되는 제품이 요구하는 물성에 어느 소재보다도 적합하기 때문에 적용 분야의 확산이 가능한 것이다. 오랜 개발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불소 포함 고분자들의 응용 분야가 한정되어 있지 않으며 연구 결과에 따라 지금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응용 분야가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불소 포함 고분자의 생산 및 응용 관련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 이유는 이미 몇몇 다국적 기업들이 기술과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에 진입하였을 때 제품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으며 불소의 기초 원료인 형석이 몇몇 국가에 편중되게 매장되어 있어 원료 확보를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소원자를 포함하고 있는 단량체들은 폭발성이 매우 강해 국가 간 또는 지역 간 이송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소 포함 고분자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단량체의 생산에서부터 고분자 중합에 이르는 일관 공정을 함께 설계하고 설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불소관련 산업에 신규로 자원과 연구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초 소재의 자급 노력 없이 수입에 의존해서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새로운 응용분야를 개척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우리에게는 자원과 기술이 전무한 상태에서도 성공적으로 관련 산업을 육성한 많은 경험이 있다. 세계 1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와 조선 산업, 세계 5위권 이내의 선두주자로 부상한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산업 등이 그 예이다. 이들 산업이 국내에서 최초로 태동될 시기에는 언제나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였으며 후발 주자로서의 고충을 감내해야 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연구자와 기업인의 도전정신이 필요할 때라고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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