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
교수직에 대한 '하는 일이 없이 편한 직업'이라는 부정적 평가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대학시절 교수와 직접 1대 1로 대화한 경험이 거의 없는데다가 지나칠 때마다 닫혀있던 연구실로부터 받았던 인상도 한 몫을 하리라 짐작된다. 또 시대적으로 교수와 대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변화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인식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즉 대학교육이 보편화된 현실 속에서 교수의 역할도 연구 활동이나 강의 외에 학생들의 진로나 생활 상담과 관련된 역할이 전보다는 많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대학 안팎의 환경은 오히려 열악해져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 중 하나가 근래에 들어 마치 교육 경쟁력 제고를 위한 만능열쇠인 것처럼 회자되는 '대학평가'라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각 기관이나 언론사 주관의 '대학평가'가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대학의 실질적인 노력을 유도하고 교육소비자인 학생, 학부모에게 알권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순기능이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평가의 잣대가 너무나 획일화되어 있어 대학의 특성과 여건에 맞는 발전을 오히려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은 큰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을 순위별로 줄을 세우는 식이라면 평가지표 중에 교수 일인당 연간 논문편수가 0.8이어서 50등인 대학과 1.2여서 10등인 대학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너도 나도 양적 지표향상만을 위한 무한경쟁 속에 과연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또 교육자적 사명보다는 경영자적인 입장을 가진 대학 운영자가 학문의 정체성이나 국가적 필요, 교수들의 학문적 배경을 고려하여 교육의 질적 개선을 먼저 시도하기 보다는 당장의 대학 지원율이나 취업률에 따라 학과 명칭을 수시로 바꾸어 나가는 것을 통해 평가지표를 높이려 한다면 그 평가의 가치와 의미는 신뢰하기 힘들어 진다.
이처럼 대학의 본질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획일화된 잣대 속에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인생의 멘토로서 '참된 스승'이 설 자리는 너무나 좁아 보인다. 각종 지표경쟁 속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교수는 직업인으로서 훌륭한 교수다. 그러나 참된 스승은 아닐 수 있다.
표주박통신으로 알려진 김조년 교수님은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을 맞이하신다. 그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는 성경귀절을 선생된 자의 자세로서 듣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그에게는 가르치는 일이 전존재적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는 매 학기 강의를 듣는 모든 학생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의 리포트를 내게 하였다. 그리고 매일 새벽 한 사람의 리포트를 앞에 두고 기도하고 나서 답장 편지를 썼다.
때때로 아니 상당히 자주 삯만을 받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맘이 들기도 하였다는 그 분의 고백이 이 시대의 얄팍함을 닮은 내 가슴에 아려온다. 하지만 '삯꾼으로는 안 된다'라는 깊은 곳의 울림이 그를 지탱하는 힘이었다고 한다. 정량화시킨 평가로는 평균이하를 가려낼 수 있지만 그 평가가 최고를 말해주지는 못한다. 평가지표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양심과 철학 때문에 '편한 직업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교수들이 있어 대학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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