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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병호 대전문화산업진흥원장 |
과학벨트 사업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초대형 국책 과학기술 프로젝트다. 거점지구인 대덕특구의 기초과학연구원 본원과 대형 실험시설인 중이온가속기를 활용해 국가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대덕특구는 연구 성과를 창출해 비즈니스로 이어가는 선순환 구조 완성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됐다. 즉 전 세계의 우수한 과학 기술자들이 대전에 모여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창조적 지식과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꿈이 현실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언급하는 언론 기사를 보면 과학과 문화 예술의 융합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창조적 발상을 위한 융합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즉 어려운 과학의 난제를 풀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지친 과학자들이 음악이나 미술 감상으로 머리를 식히고 새로운 활력을 찾는 취미생활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2007년, 은하도시포럼 (현재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포럼)이 과학과 문화예술 융합의 아이디어를 화두로 삼은 것은 이와 같은 단순한 레크리에이션 개념은 아니다.
학문 간의 융합과 통섭(consilience , 統攝)은 이제 우리사회에서도 낯설지 않은 개념이 되었다. 기존의 분과학문 체계에서 개별적으로 좁고 깊게 파오던 관행과 노력은 상당부분 한계에 도달하였다. 이제 문제해결을 위해 한 분야만 가지고 해결하기에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즉 융합과 통섭은 하면 좋을 것이 아닌 하지 않으면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단계에 온 것이다. 다시 말해 창조의 출발점은 융합과 통섭(統攝)이다.
천재들이 활용한 창조적 사고를 분석한 유명한 저서 생각의 탄생의 저자 로버트·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2005년까지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510명(노벨상 수상자)을 영국왕립협회, 미국국립과학원 등에 소속된 과학자·교수 등(일반 과학자)과 비교한 결과,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은 예술·문학 등의 분야에 취미 이상의 수준으로 몰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일반 과학자와 비교해 음악가가 될 가능성이 4배, 화가는 17배, 소설가나 시인은 25배, 공연예술가가 될 가능성은 22배나 높았다고 밝혔다.
과학, 기술계가 아닌 사업과 경영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다. 영국의 버진 그룹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수준급 기타리스트이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읊는다. MS 전 회장 빌 게이츠는 수시로 미술작품과 역사적 유물을 수집한다. 사치 앤 사치의 CEO 케빈 로버츠는 틈날 때 마다 무용을 연습한다. 국제경영의 전쟁터에서 촌각의 여유도 없을 세계적 CEO들이 문화, 예술의 세계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대(代)가 써도 남을 부를 소유하니 이젠 문화예술의 호사를 누리겠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 과학비즈니스 벨트에 이와 같은 융합의 개념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제가 선행해야 하나? 무엇보다 먼저, 지금의 대덕 연구단지의 구조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지금 대덕단지의 구조는 전형적인 칸막이 형(型)이며 프로세스 중심 구조이다. 따라서 각 과학 분야들의 지식이 융합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문학자,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열린 공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설계 초기부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
'중이온 가속기'와 '기초과학 연구원'은 하드웨어다. 하지만 노벨상의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 각자의 분야와 전공이 만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는 매력적인 곳, 그곳이 대전이어야 한다. 따라서 대전시는 선진국을 따라만 가면 되던 (Catch Up) 한국 역사에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진흥정책과 다른 지자체와 다른 창의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벽에 부딪힌 과학계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그곳, 대전에 가야 한다는 소문이 과학계의 상식이 되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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