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업고 혹은 들쳐 메고 남과 북에 배달해주는 전령사다. 어느 날 탈북한 북한 고위 간부의 애인 인옥을 서울로 데려오는 임무가 주어진다. 휴전선을 넘으면서 두 사람은 미묘한 감정을 나누게 되고 남과 북의 ‘요원’들은 이를 이용하려는 위험한 계획을 세운다.
이 사내 어째 ‘바람’ 같은 느낌이다. 위험한 비무장지대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바람(風). 또한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갔으면 하는 이산가족이나 탈북자들의 바람(念願). 이 두 개의 바람이 살을 얻어 의인화한 것 같다. 나이도 이름도 국적도 불명한 것이나 “동무의 피에서는 비린내가 나지 않아요”하는 인옥의 말에 심증은 더 짙어진다.
그렇다면 사내가 남과 북의 요원들에게 고초를 겪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분단이란 상황이 우리의 정신세계에 어떻게 불신과 증오의 유전자를 새겨놓았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연출도 흥미롭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전혀 무겁지 않다. 드라마인 듯하고 멜로인 듯하다가 돌연 액션과 코미디가 튀어나온다.
사내나, 암살 위험에 놓인 탈북 북한 고위 간부나 내연녀나 ‘요원들’이나, 심각한 상황에 처한 그들의 진지한 언행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웃음이 폭폭 터진다. 남과 북의 요원들이 벌이는 클라이맥스의 전투 장면은 진지함과 웃음을 동시에 잡은 ‘풍산개’의 진수다.
윤계상은 영화 내내 말 한 마디 없는 사내를, 표정과 눈빛만으로 관객을 납득시키는 호연을 펼친다. 김규리의 연기와 사투리도 썩 잘 어울린다.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 극단적 대칭 구도, 냉소적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불쾌한 사실 등 김기덕의 색깔이 짙지만 대중적 요소가 넘실댄다. 그간 김기덕 표 영화는 호불호가 분명히 갈려 흥행에선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풍산개’는 다르다. 뭔가 일을 낼 것 같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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