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영 따뜻한손 대표, 전 국무총리 공보실장 |
민주당은 어제 전경련 허창수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과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국회 공청회와 청문회에 불참한 데 대해 지난번 대선에 출마했던 정동영 최고위원까지 나서 비난의 칼날을 세웠다. 한나라당도 예외가 아니다. 당대표 자리에 도전한 7명의 후보 모두 대기업과 총수들이 “오만하고 탐욕스럽다” “대기업이 독주해선 안 된다”며 경쟁적으로 비판에 가세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질적·양적으로 실적을 키워서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로 이익공유제를 제안했을 때 '급진좌파적 주장'이라고 매도했던 홍준표 후보까지 다급해지자 “콩나물·두부까지 대기업이 하는 건 재래시장을 죽이는 것”이라고 하루아침에 말을 바꿨다.
바야흐로 선거철이 다가온 것이다. 한 표가 아쉽다는 뜻이다. 썰렁한 윗목까지 온기가 돌게 해 '배 고픔'을 달래주는 데는 역량도 부족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손쉬운 재벌 때리기를 통해 '배 아픈' 민심에 호소함으로써 한번에 실점을 만회해보자는 얄팍한 정치적 계산이다.
역대 정권은 초창기에 권력의 정통성 부족을 벌충하기 위해 이런 우회적 방식을 써왔다. 50년 1개월 보름 전 새벽, 장면 정권을 무너뜨린 일단의 정치군인들이 처음 도모한 일도 '부정축재자'라는 이름을 씌워 기업인들을 구속하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바람을 탄 회사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선거를 앞두고는 매번 “보험을 든다”는 소문이 나도는 것은 기업의 운명이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권위주의적인 정치문화 때문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 말로는 국제적 기준을 내세우면서도 협력업체에 특허도면을 제출하고 원가를 공개하라고 압박하는데, 어떻게 중소기업이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확충할 수 있겠는가. 사흘에 한 개꼴로 계열기업을 확장하고 매일 한 켤레씩 필요한 면장갑부터 복사용지까지 계열사를 통해 납품을 받는 현실 앞에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어디 있는가.
거시지표만 보면, 21세기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고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 5000만 명에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현재 우리의 국력보다 나은 나라는 전세계를 통틀어 6개국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뿐이다. 그러나 압축성장의 그늘은 그 빛 이상으로 짙은 게 현실이다. 불균형과 양극화 문제다.
박정희 정권 이래 대기업과 수출기업 중심의 불균형성장 정책을 추구하다보니 부유층과 서민층·서울과 지방·도시와 농촌·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소득분배의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1997년 경제위기 이전에는 0.28 수준이었으나 2009년에는 0.32로 높아졌다.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지는 비등점이 코앞에 다가온 경계상황이다.
장기적 해법이 양질의 교육 기회를 확충하여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대기업의 문어발식 영토확장을 억제하여 신규 창업의 길을 터주고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술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어 주는 것은 시급한 당면과제다. 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회의원은 권력의 한 축이다. 필요할 때는 '헌법기관'이라며 위세를 부리다 선거가 다가오자 갑자기 좌로 이념의 좌표를 옮겨 재벌 때리기로 책임을 모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새는 좌우 와, 양쪽 날개로 난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하루빨리 동반성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북핵 문제와 함께 우리가 안은 가장 큰 위협인 양극화를 해결하고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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