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올해부터 경기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에 600여 건의 교사 징계에 관한 글이 올라왔는데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만만찮다고 한다.
학교 현장에 대한 이러한 보도를 접할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고 우려되는 바가 크다. 지금 다른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서명운동이 한창이라는데, 학생 인권보다 교사의 교권이 먼저 확립되어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교사들이 징계를 피하기 위해, 혹은 학생들의 반발이 두려워 교육현장에서의 지도를 방관하게 된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되돌아가고 말 것이다. 몇 명의 불량학생 때문에 전체 학생들이 입는 피해나 손해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교육 때문에 공교육이 설 자리를 잃어버린 판에 교사의 권위마저 땅에 떨어진다면 교실은 완전히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대학은 그나마 성인이 되어서인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중등교육 환경이 이런 식으로 피폐화 된다면 대학에서도 불미스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의무보다 권리를 주장하고 규율이나 규칙을 무시하게 된다면, 이들이 사회의 주역이 되었을 때 국가와 사회의 기강은 무너지고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학생인권조례보다 상위의 법인 초중등교육법에서 간접 체벌을 허용했으나 몇 개 시도 교육감들이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경기도에서는 수업시간에 휴대폰 영상통화를 한 학생에게 5초간 엎드려뻗쳐를 시켰는데 그 선생님을 징계하여 논란이 일고 있기도 하다. 징계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법을 지켜야 할 공무원이 스스로 법을 무시하고, 더구나 교육자로서 국가의 기강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올바른 처신이 아니라고 본다. 학생들이 그것을 보고 무엇을 배울지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교육을 받았을 때나 또 내가 자식들을 교육시켰을 때, 우리나라의 교육 풍토는 이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자식들을 엄하게 교육시켜 학교로 보냈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랐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다고 투정이라도 부리면, 얼마나 잘못했길래 선생님께 혼났냐면서 오히려 자식을 다그쳤던 것이 그 시절의 일이었다. 지금처럼 내 자식에게 왜 벌을 주었냐며 학교에서 와서 행패를 부리는 학부모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모든 학부모들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녀들의 선생님을 존경하고 높이 받들었다. 내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이렇게 대접한 적은 없었다.
『벽암록(碧岩錄)』을 보면 사제지간을 비유한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병아리가 껍데기를 쪼아[啐] 밖으로 나오려 할 때, 암탉이 함께 바깥에서 쪼아[啄] 세상에 나오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스승은 이끌어주고 제자는 전심(全心)으로 이를 따르는, 가장 이상적인 사제간을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교육계는 선생님들의 탁(啄)을 오히려 막아버리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부화되어 날개를 펼치고 자라나야 할 미래의 주역들이 알 속에 갇혀 썩어간다면, 훗날 누가 이 책임을 짊어져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