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개의 기둥만 남아있는 아폴론 신전 |
이 유적에는 로마시대의 화장실도 있는데 입구 바로 왼쪽의 유리클레스 목욕탕에 딸려 있었다. 대리석 판에 구멍이 뚫려 있는 정도지만 그 바로 앞에는 물을 흘려보내는 홈이 있다. 이 무렵부터 이미 수세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폴론 신전 이전에 동일한 자리에 두 개의 신전이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되고, 지진에 의해 폐허가 됐다.
▲고대 로마 유적지=지중해 지역에 고대 로마의 도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이 곳이 정착생활을 가장 먼저 시작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곳 사람들은 기원전 7500년경부터 한 곳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여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각지에 도시를 세우게 됐다. 그 도시들은 당시 문화의 중심지인 로마를 본따 지어졌다. 그렇다보니 현재 남아있는 고대 로마 유적들은 로마와 비슷한 게 유독 많다. 원형극장, 수도교, 원형경기장, 공중 목욕탕 등이 그 좋은 예다. 아직도 당시의 생활을 상상할 수 있는 유물과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고린토 고대유적지 박물관에 가면 고린토산 투구와 스핑크스상 등을 만날 수 있다. 이 고린토산 투구는 그 당시 최고의 명품으로, 우리나라 국보로 지정된 것을 손기정 선수가 되찾아왔다.
스핑크스는 독수리 날개, 사자 몸, 뱀 꼬리, 아몬드 눈을 가진, 지상 지하 최고의 예지와 민첩함의 상징으로 수호신 개념을 갖고 있다. 스핑크스는 이오니아식 기둥 위에서 그리스 신전을 지키는데 쓰였고 고린토의 아이콘은 페가수스였다.
박물관에는 유적과 이 지방 일대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부터 로마시대까지의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무엇보다 BC 8~7세기의 고린토식 도자기가 가장 흥미롭다. 동방화양식이라고도 일컬어지는데 소아시아와의 무역을 통해 동양 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항아리에는 동물과 상상속의 괴수, 식물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이전의 기하학 문양에 비해 상당히 장식적이다. 고린토식 항아리는 이후 그리스 항아리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대 고린토가 무역도시로서 최고 전성기를 맞게 되는 것은 BC 7세기지만, 이 땅이 전 세계와 연관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고린토 항아리'가 각지에서 발굴되고 있는 것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로마시대의 출토품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 황제의 전신상과 네로의 두상이 유명하다.
▲ 높이 80m 폭 21m 길이 6.3㎞의 고린토 운하 |
AD 67년에 로마의 네로 황제가 6000명의 노예를 데리고 자기 스스로 첫 삽질을 해 공사를 시작했다. 이듬해에 네로 황제가 죽자 갈바 황제는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운하 공사를 중지시켰다. 이후 1881년 다시 시작해 1893년에 완성했다. 이 운하 덕분에 네로 황제가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좋았다고 전해진다. 이 고린토 운하에 가면 번지점프를 하는 사진 패널도 걸려 있다.
/그리스 고린토=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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