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찬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영학부 교수 |
발표를 시작하기 전에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끼리 자연스럽게 명함을 교환하게 되었는데, 마침 옆에 앉은 사람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을 갚지 못해 은행이 압류한 주택을 처리하는 회사를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운영하는 회사의 대표여서 미국의 부동산 문제에 대해 여러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7년 부동산 거품이 터질 때까지 자기가 현금으로 가진 돈이 주택 가격의 10%만 있어도 은행이 30년간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나갈 수 있도록 무리하게 대출을 해주었다. 예를 들면 100만 달러짜리 집을 10만 달러의 자기 돈만 있으면 90만 달러를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30년간 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가는 방법이다. 이러한 제도는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전까지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때는 문제가 없었다. 100만 달러에 산 집이 불과 몇 년 만에 200만 달러로 배가 되니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집을 담보로 다시 수십만 달러씩 대출받아 또 다른 집을 사거나 비싼 자동차 등을 구입하였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산효과(Wealth Effect)라 부른다. 실제로 이 날 발표에 따르면 1900년 이후 평균적으로 100을 기준으로 움직이던 미국주택가격지수는 2007년 버블이 터지기 직전에는 2배가 되는 200까지 치솟았다. 즉, 비정상적으로 주택가격이 폭등했던 것이다.
문제는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2차 대출을 포함한 주택가격이 은행에서 대출받은 총액 아래로 떨어지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집을 팔아도 은행대출을 갚을 길이 막막한 상태에서 경기가 나빠지니 사업하던 사람은 사업이 안 되고, 직장생활 하던 사람은 직장에서 해고되면서 대출원금과 이자를 3개월간 갚지 못하게 되었고, 은행은 집을 차압하게 되는 사태가 무더기로 발생한 것이다. 통계를 보면, 미국 경제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한 지난 2008년 1월 이래 87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실업률은 지난 2009년 10월 26년 이래 최고 수준인 10.1%를 기록한 뒤 지난달 9.1%까지 소폭 하락한 상황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현재까지 4년간 집값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이날 발표에 따르면 올해도 약 5% 정도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2013년에나 회복 기미가 보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한국도 현재 서울과 수도권에서 번듯한 직장을 갖고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과 세금 부담으로 인해 쓸 수 있는 돈이 없어 빈곤하게 사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부동산 상승기에 저금리에 편승해 무리하게 대출받아 내 집 마련에는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걱정이 많을 것 같다.
일단 주택의 수요측면에서는 심리적으로 현재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이 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구구조도 젊은 사람이 줄고 있고, 더구나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되니 결혼을 못하고 결혼을 못하니 집이 필요 없어 부모와 같이 살거나 원룸에 사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어서 비싼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또한, 금리가 오를 전망이니 대출받아 집을 마련할 생각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반면에 공급 측면에서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직장에서 은퇴한 50대 이후는 비싼 집에서 살 이유가 없고, 향후 집값이 하락할 거라 예상되니 빨리 팔고 싶은 동기가 생길 것이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매년 급증해 1분기 말 개인부문 금융부채가 1000조원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특히 개인의 부채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46%(2010년 말)로 이미 부동산 버블이 꺼진 미국 수준을 넘어섰다. 아직도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믿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다. 미국의 경우를 보거나 한국의 인구구조와 경제상황을 볼 때 부동산과 연관된 은행대출 문제를 대단히 심각하게 보아야 할 때이다. 문제는 일반대중이나 정부나 “버블은 버블이 꺼져야 버블이었다”라고 깨닫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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