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형 목원대 무역학과 교수 |
그러나 아직까지도 전체 인증대상기업의 대부분은 인증요건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고 이들 기업의 상당수가 중소기업(전체 4333개사 중 92%인 4002개사)이라는 점은 홍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판단된다. 오히려 벌써부터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서 생산한 제품을 우리나라로 수입한 후 'Made in Korea'를 부착해 다시 유럽 등 FTA 시행 국가로 재수출하는 원산지세탁에 대한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한 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EU FTA가 수출 대기업 중심 품목에 의존하고 있어 국내 기업의 관세인하 혜택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있다. EU 시장에서의 10대 주력품목의 비중이 전체 수출의 66%를 넘고, 50대 품목의 경우에는 약 86%에 달한다는 것이다. 즉 최대 50개 품목을 제외하면 실제 한-EU FTA의 관세인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품이 많지 않다는 것으로 관세인하 제외 품목을 다루는 기업의 입장에서 FTA는 결국 새로운 규제를 의미할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현재 필자가 국내 모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한-EU FTA를 통한 지역전략산업의 무역역조 개선에 관한 연구' 과정에서도 FTA의 시행이 가시적으로는 관세인하를 통한 무역역조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HS 코드의 분류단계를 세분화 할 경우(즉 세부 품목을 대상으로 할 경우) 실제 지역 기업이 다루는 물품이 관세인하 혜택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다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동안 지역 기업의 제품이 실제 한-EU FTA 시행대상인지 여부에 관한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EU 시장을 겨냥한 수출품목의 다변화가 없이는 한-EU FTA의 폭넓은 관세인하 혜택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전 지역의 상황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한-EU FTA의 시행에 따른 여러 가지 준비와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지역 기업의 현황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통하여 한-EU FTA의 대상이 되는 품목을 중심으로 성장잠재력이 높은 기업에 대한 수출지원의 확대, 내수기업의 수출기업전환, 유럽의 대형 유통업체의 글로벌 아웃소싱을 활용한 중소기업 제품의 브랜드 수출 등 한-EU FTA의 실질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중소기업 중심의 대응책이 시행될 수 있을 것이다.
혹자의 말처럼 FTA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국가와 지역의 교역규모를 확대하고 기업의 발전을 동시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윈-윈 게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FTA가 참여하는 것만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손쉬운 게임은 아닐 것이다. 다른 지역의 경우 지역산업의 특성을 활용하여 유럽 기업의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부산항만공사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에서는 동북아 물류거점으로서의 지역적 강점을 앞세워 유럽의 물류·제조기업을 타깃으로 투자유치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계획한 대로 이루어진다면 지역 중소기업의 수출 확대와 수출산업기반의 저변 확충을 위한 상당한 유인이 될 것이다.
물론 지역산업의 특성에 따라 그 준비와 방법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EU FTA를 그림의 떡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면에서 우리 대전의 관계 기관과 기업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고 있다. 한-EU FTA 시행에 대응한 지역 차원의 노력이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순히 지역 중소기업의 한계나 의지의 부족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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