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주역에서는 태괘 다음에 비괘(否卦)를 뒀다. 세상사는 한 번 음이 오면 한 번 양이 오는 법, 한 번 태평하면 한 번 비색한 세상이 온다는 뜻이다. 결국 통했느냐 막혔느냐, 세상사 모두를 비태(否泰)로 설명할 수 있지만 대부분 학자들은 언로(言路)의 통색(通塞)으로 풀이한다. 율곡은 “언로가 열리고 막히고에 나라의 흥망이 달려있다[言路開塞 興亡所係]”며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공자는 태괘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사귀어서 그 뜻을 함께한다[上下交而其志同]’하고, 비괘에서 ‘상하가 사귀지 못하니 천하가 나라가 없다[上下不交而天下无邦也]’했다. 상하가 사귄다 함은 마음을 함께하는 것이니 즉 언로(言路)의 통함을 의미하지만 언로(言路)가 막히면 ‘나라도 없다’는 뜻 깊은 경구이기도 하다.
언로를 잘 이용하신 분은 순임금이다. 『중용』에 ‘순은 묻기를 좋아하고 천근(淺近)한 말을 살피기 좋아하시되, 좋지 않은 말은 숨겨주고 좋은 말은 칭찬하시며 여러 중론 중에 가장 적절한 말을 잡아서 백성들에게 그 중(中)을 쓰시니 그 때문에 순임금이 되신 것이다[舜 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所以爲舜乎]’하였다. 때문에 공자는 특별히 순임금을 지(知)자 앞에 ‘큰대(大)’를 붙여 ‘대지(大知)하신 분’이라 했다. 또 순임금 때에는 ‘비방지목(誹謗之木)’이 있었다 한다. 화표목(華表木)이라고도 하는데, 다리 위에 나무를 세워두어 백성들에게 비방할 일이 있으면 나무에 쓰게 해서 반성했다는 고사다. 아마도 정치에 자신이 있었으니 이리 했을 것이다.
반대로 언로를 막아서 망한 왕도 있다. 중국 주(周) 여왕(勵王)이 무도해서 포학한 정치를 행하고 국인들이 비방하는 것을 감시하여 죽이니 사람들이 말을 못하고 도로 사이에서 서로 눈빛으로 주고받을 뿐이었다[道路以目]. 왕이 기뻐하며 “내 능히 비방을 그치게 했다”하니 소공(召公)이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더 어렵다(防民之口 甚於防川). 물이 막혔다가 터지면 사람이 많이 상할 것이다”며 간하였다. 그러나 여왕은 듣지 않았고 이에 국인들은 난을 일으켰고, 여왕은 체(彘)땅으로 도망했다 한다. 마음속으로 비방해도 처벌한다는 진시황의 복비법(腹誹法)을, 한무제때 입술만 내밀었는데도[反脣] 복비(腹誹)의 죄로 몰고 간 장탕(張湯)의 탄압정책이나,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舌是斬身刀]’는 풍도(馮道)의 설시(舌詩)를 인용해서 신언패(愼言牌)를 만든 연산군이나 모두가 언로를 막아서 패망을 당한 역사적 인물들이다.
정조대왕은 “나라에 있어서 언로(言路)는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혈맥과 같고, 지도층의 기개는 원기(元氣)와 같다”하였다. 혈맥이 막힘없이 통하고 원기가 충만하면 몸이 편안해지듯이 언로의 통색(通塞) 여부는 나라의 흥망성쇠에 직접 관계된다는 뜻이다. 흔히 나라에 도가 있다 없다는 언로가 통했느냐 막혔느냐로 판별한다. 대개는 언로의 중요성을 말하고는 있지만 혹 윗사람이 말 듣기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언로가 막히고 아랫사람이 바른말을 못하는 것은 무슨 연유가 있을 것이다. 어진 군주 밑에 충직한 신하가 모이고 포학한 군주 밑에 간신배가 모이는 법이라 하니 언로를 통하게 하고 막게 하는 것은 역시 윗사람 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