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이렇게 다시 봐도 꽃은 식물의 성기이며, 더 의인화해서 식물은 거꾸로 선 사람이다. '맥주의 혼'인 홉의 제일 조건은 처녀성이다. 수정 안 된 숫처녀 꽃이어야 제 기능을 한다. 암꽃 군락은 왠지 수녀원 분위기다. 독일에는 홉 농장 주변에 수놈 홉을 방치하면 경작농을 처벌하는 법까지 있다.
어느 맥주회사에서 술집 이름에 '호프'를 붙여 퍼졌던 말을 이제 와서 오류니 와전이니 주장하는 것도 맥없다. 또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미국인들이 '한국사람 다 됐다고 느낄 때'를 잠깐 보자. 면을 가위로 잘라 먹을 때, 두루마리 휴지가 식탁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을 때, 놀라며 '아이고' 할 때, '현대'를 제대로 발음할 때, 공무용 차를 내 차라 할 때, 그리고 '미국 가서 호프집 열고 싶을 때'도 들어 있다.
그뿐 아니라, 한국생활 오래 한 영국인 댄서가 “호프집”으로 발음하는 걸 아주 똑똑히 들은 적이 있다. 호프집과 비교적 유사한 것이 그들의 퍼블릭 하우스다. 아스날의 감독은 거기서 축구철학을 완성했다 자랑하고 한 정객은 거기 술집이 하원 구실을 한다고 치켜세운다. 줄여서 펍(pub)인 이 선술집은 완전한 공공장소 수준이다.
술의 문화와 과학이 어떻든, 아니 어떤 유형의 술집에서든 아직 우리는 그렇게까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마 염홍철 대전시장과 시청 자전거동호회원들이 대전 태평동 소재 호프집에서 벌인 '호프데이(hope day)' 행사가 이색적인 뉴스로 비쳐졌을 것이다. 부서별, 직급·직렬별 릴레이 미팅으로 쌍방향 소통 채널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를 통해 맥주의 풍미와 거품처럼 부드러운 인간관계를 형성한다면 이보다 좋은 효과는 없겠다. 따라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특별한 의미 부여 없이도 희망을 찾고자 한다면 그 자리가 호프(hope)의 본거지다. 허구한 술 마시는 핑계거리 하나 추가하거나 물불 없는 주량 경연대회로 이행되지 않는다면, 몸과 마음을 데워주는 불에 화상을 입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늘 또 한 번, '수울', '수을'로 '술'을 적었던 조상들에 경탄한다. 그 전에는 술이 익을 때 보글보글 끓어오름을 물[水]에서 불[火]이 나는 걸로 보아 '수블'로 적었을 것이다. 소주의 '소(燒)'도 불붙는다는 뜻이다. '불'만인가. 술을 따르고, 목으로 넘기고 잔 부딪치는 소리로도 묘하게 사람을 취하게 한다. 마이신 같은 술, 스테이크처럼 잘라먹는 술은 영원히 출시 안 된다는 데 동의하는 이유다.
당연히 호프데이의 술은 직장생활의 약념(藥念→양념)이 될 만큼만 복용하는 약주(藥酒)에 가까웠으면 좋겠다. 절제를 곁들인다면 '호프집'에서의 시간들이 해피아워일 테고 성숙한 숫처녀 꽃의 '홉'을 마시며 호프(희망)를 말할 수 있는 그날이 진정한 해피데이일 것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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