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0주년을 맞아 충청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중도일보의 발자취가 재조명됐다.
중도일보는 '서해안 개발', '정부청사 유치', '대전 고법·고검 설립', '행정중심복합도시 실현' 등 역대 지역현안 추진사업을 주장하면서 충청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 나갔다.
지난5일 대전월드컵 경기장 3층에 마련된 창간 기념식장에는 중도일보의 발자취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연표(年表)가 게시됐다.
중요한 순간만을 적어놓은 연표였지만 60년의 긴 역사는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워야만 했다. 참석자들은 1951년 중도일보 창간을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순간들을 눈여겨 보며 지난 세월에 대한 회상에 잠겼다.
이처럼 중도일보의 역사에 관심이 쏠린 이유는 중도일보가 걸어온 길이 굴곡진 충청의 역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도일보는 한국 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폐허 속에서 나라 전체가 암울한 혼란과 실의에 빠져 있던 1951년 8월 24일 첫 모습을 나타냈다.
'압록강에서 제주도까지의 중심이자 신도시로 넉넉한 터전을 지닌 대전에 중도(中都)를 건설하자'는 기치를 내 걸고 탄생한 것이다.
창간 후 지역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해 온 중도일보는 1966년 서울을 비롯해 84개 도시의 취재·보급망을 확보했고, 1969년에는 일본에 지사를 설치해 세계로 뻗어가는 지역신문을 대표했다.
이듬해인 1970년에는 중구 대흥동에 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의 신사옥을 기공해 경암빌딩 시대를 열었다. 당시 시간당 3만부를 찍어내는 초고속 윤전기도 도입됐다.
하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군사독재정권의 '1도(道)1사(社)' 정책의 희생양이 돼 1973년 5월 24일, 지령 제7070호를 마지막으로 어이없게도 강제 폐간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폐간의 시련은 1987년까지 이어졌지지만 불의에 굴하지 않는 충청의 민심과 같이 1988년 9월 1일 7071호를 발간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화려한 부활은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서구 갈마동에 지하 1층 지상 12층의 신사옥을 기공하고 대전, 충남·북 지역 최초로 전자신문을 개통했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IMF를 거치면서 경제난에 임시 휴간하기도 했지만 '지역민의 눈과 귀가 되겠다'는 의지를 가진 김원식 충청매일 사장이 중도일보를 인수 합병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맞게 됐다.
특히 '계룡산 국립공원 승격', '서해안 개발', '정부청사 유치', '대전 고법·고검 설립', '충청은행 설립', '아산만 지역개발', '충무체육관 건립', '행정중심복합도시 실현' 등 충청의 발전과 함께 중도일보도 맥을 같이 했다.
지역의 발전을 선도하며 변화를 모색해 온 중도일보는 또다시 변화에 앞서나가는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시대변화에 따른 미디어 환경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것이다.
김원식 중도일보 사장은 “60년 동안 충청민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중도일보는 충청민을 대변하고 지역 발전을 선도하기 위해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며 “앞으로 그려나갈 중도일보의 미래에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시우 기자 jab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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