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홍 시인·갤러리예향관장 |
고령화 사회로 가는 길목에는 모든 사람들은 잠재적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행정은 속도에 관행에 얽매여 있고 변화를 두려워한다. 중복 수혜의 불합리함이 가로막는다. 청소년, 노인, 여성 앞에 장애인이 붙으면 행정이 길을 잃어버린다.
문화 복지는 작금의 현실적 화두다. 정보와 제도의 대립과 문화공급자들의 구조적 불안이 인터네트워킹시대와 스마트 시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귀로에서 헤매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정신적 소도가 필요하다. 통합놀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함께하고 있는 필자는 깜짝 놀랐다. 국악기의 가락에 일어나 춤추는 중증장애인 아이들의 모습과 자신을 그리고 표현하는 미술, 동시 짓기 놀이를 하는 중에 목이 메었다. 어느 한 아이가 다가와 '낼 또 와요?' 하는데 말을 잇지 못했다.
문화 복지는 예술인들에게는 솟대와도 같다. 첫 입맞춤이 인생의 기억을 통틀어 전부인 것처럼 뜨거울 것이고, 시행착오도 많을 것이다. 그것은 매뉴얼 화 해가는 과정의 불변의 법칙과도 같다. 장애인인식개선 오늘이 함께하는 창작 집필실 프로그램 안에서 장애인 예술인들은 첫 열매를 보고자 한다. 그것은 시대적 조류고 지역에 공공의 기능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화 복지 행정을 담당하는 분들에게도 현장에서 필요한 요구를 집행 할 수 있는 권한의 증대도 필요하다. 중앙부처와 지방부처의 대화채널도 확대해야 하고 예술인들도 새롭게 대두되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변화해야 한다. 예술은 배고파야 나온다는 잘못된 인식은 접어야 한다. 지금 모네나 워홀 작품들이 그 나라의 산업의 일부가 되지 않는가. 지금 우리 지역의 시립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은 작가들이 태어난 나라의 국가산업된 것이다. 바라보고만 있고 나와는 먼 나라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만다.
오아시스를 찾아가던 고 정주영 회장의 꿈과 용기 노력을 배워야 한다. 안된다고 하기 전에 해보자고 하고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도전하는 용기를 행정적 서포터를 시와 정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예술인들에게는 절실하게 그런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대전지역예술이 마그마처럼 꿈틀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창의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젊은 작가들과 행정력을 지원해 주는 생각 있는 공무원이 많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이 예술가들과 공연장 전시장 거리에서 바닥에 앉아 라면 끓여 먹고 형님 동생 하며 가끔 길에다 오줌도 누고 예술을 논하는 현장주의가 필요하다.
대전에서 지금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예술전용공간 프로그램이 돌고 있다. 많은 장르의 작가들 다양한 예술가들이 소외계층 순회사업은 물론 스스로의 변화에 채찍질 하며 노력하고 있다. 이에 문화재단도 과중한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지역 단체와 소통하고 있다. 이게 기업과 과학, 연구소와 예술이 공유하기 좋은 가장 최적의 환경을 가진 곳이 대전이기 때문이다. 공익이 아닌 단지 자신의 편협한 가치관을 내려놓아야 한다. 풍수를 하시는 분들이 3만년이 지난 지금에 까지 내려온 것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그것을 유상이라고 하는데 나침반이다. 과연 그 나침반을 누가 할 것인가 예술인인가 행정가인가 하기 보다 내려놓고 의논해서 된다는 전제에서 갈 때만이 온전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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