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컴] <17> 기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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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희의 컴] <17> 기록의 힘

  • 승인 2011-05-26 09:04
  • 임연희 기자임연희 기자
[임연희의 커뮤니케이션] <17> 기록의 힘


“하느님 저 좀 도와주세요. 뛰어내리려니 너무 무섭고 목을 매니 너무 아파요. 제발… 나는 비오는 창밖을 향해 작별인사 다 했어요. 이제 그만 편안해지게 해 주세요. 제발….” 트위터에 자살 암시 글을 올렸던 송지선 MBC 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가 끝내 건물 밖으로 몸을 던졌다.

▲ 임연희 인터넷방송국 취재팀장
▲ 임연희 인터넷방송국 취재팀장
팬들의 신고로 1차 자살은 막았지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트위터와 누가 썼는지 모를 싸이월드 미니홈피 글이 그녀의 최후 죽음까지 막지는 못했다. 아니, 이 글들이 트위터와 싸이월드를 자신의 일기장처럼 생각했던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수도 있다. 자신의 계정에서 삭제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미 누군가에 의해 퍼날라져 내 기록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무서운 노릇이다.

이와 반대사례도 있다. 지난해 10월 대전시와 중구의 관리부실을 넘어 방관 속에서 재개발조합 측에 의해 무단 철거된 대흥동 뾰족집은 철거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이전부지 선정도 못한 채 해체자재들은 창고에서 잠자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이시영 부통령 숙소로 사용됐던 보문산 입구 대사동별당도 하루아침에 사라지더니 식당과 찜질방으로 탈바꿈했다.

대전을 대표하는 근대 건축물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쉬움과 함께 이 건물들이 어떻게 지어졌고 누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으며 내외부 형태가 어떻게 바뀌다가 철거됐는지에 대한 세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기록은 힘이 세다. 꼭 기록해야할 일은 기록해 두지 못해 안타깝고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될 일들은 필화로 번지기도 하니 말이다.

최근 목원대에서는 죽은 자료들을 되살려내는 기록의 힘을 키우자는 워크숍이 있었다. ‘근대도시 대전, 아카이빙을 위한 이론과 실제’라는 이번 행사는 도면 한 장, 사진 한 장, 영상 한편까지도 수집 보관 활용함으로써 역사와 문화가 빈약한 대전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자는 취지다.

근대도시 대전의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근대유산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고육지책에서 나온 의미 있는 움직임이다. 현장자료가 없는 도시발전은 불가능하며 근현대사를 무시한 오늘과 내일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당장은 번듯한 건물과 화려한 조명이 빛나겠지만 자료와 기록은 미래세대를 위해 훨씬 가치 있는 자산이다.

인천문화재단은 2005년 지역문화예술자원DB구축작업을 마쳤으며 인천대가 부설연구기관으로 설립한 인천학연구원은 근대인천과 관련한 디지털도서관 역할을 하고 있다. 경기도는 물론 인근 전북과 충북도 이미 무형문화재 기록화사업을 마쳤다. 이에 비하면 대전문화재단의 아카이브와 대전시의 무형문화재 기록화사업은 무개념에 가깝다.

대전문화재단이 지난달 문을 연 ‘대전문화전자아카이브’는 문학, 미술, 연극, 무용, 음악 등 모든 장르의 문화정보를 축적한다고 했지만 거의 모든 페이지가 ‘자료 없습니다’ 일색이다. 특히 다른 지역 문화재단들이 문화예술, 문화재, 구술자료 등 다양한 사진 영상자료를 수록하는 데 비해 텍스트 위주의 대전 문화정보는 옹색하기 이를 데 없다.

목원대 김정동(건축학과)교수를 주축으로 근대도시 대전의 아카이브를 구축하자는 이번 프로젝트는 김 교수팀이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3000만원의 국비 지원을 받으며 시작됐다. 대전의 근대문화유산을 실물과 디지털보관소에 수집보관하는 통합운영체계를 갖춰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으려면 중장기 계획과 함께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한다.

중구 으능정이 문화거리에는 내년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능가하는 멀티미디어․ LED거리가 조성된다. 염홍철 대전시장의 공약사업이라는 LED거리에 투입되는 예산은 165억5000만원이다. 이 가운데 83억5000만원이 시비인 것을 보면 대전 근대유산 아카이빙에 올해 지원된 3000만원은 민망할 정도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문화유산들이 사라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정년을 바라보는 교수의 절규를 염 시장이 들었다면 과연 으능정이를 라스베이거스처럼 만드는데 83억을 쓸 수 있을까?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달다지만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허물어지는 우리 문화유산을 수집․기록해 후대에 전하는 일과 와인축제를 열고 휘황찬란한 LED거리를 만드는 사업의 우선순위는 따져봐야 한다.

대전시장 뿐 아니라 구청장, 국회의원, 지방의원 등 너나 할 것 없이 선거 때마다 원도심을 살리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원도심 재생은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가는 옛 거리와 옛 시장, 옛 건물을 기록하고 활용하는데서 시작해야한다. 기록시기를 놓친 뾰족집과 대사동 별당이 그 좋은 예다. 근대도시 대전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는 일은 당장 주민들의 박수를 받지 못할 수 있지만 지금도 계속 기록 저장되고 있는 역사가 언젠가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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