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남 본사 주필 |
저축은행 비리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며 공직자의 존재이유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되짚어 보게 된다. 아마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의 단초를 조선시대 청백리(淸白吏)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상념이 스친다. 정옥자 서울대명예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 학자관료인 사대부의 이상적인 역할모델이 바로 청백리다. 청백리의 전형적인 인간형들은 과거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조선시대에 집중적으로 나타났으며 국가가 이들 청백리를 제도적으로 육성했다. 청백리가 되면 본인의 명예는 물론 자손까지 국가의 특전을 받았다. 반대로 탐관오리 명단에 이름이 오르면 본인 처벌과 함께 그 자손까지 벼슬길이 막혀 신분하락의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조선시대 청백리의 수는 무려 160여 명에 이르는데 장관급인 판서가 30명 이상으로 가장 많다. 이는 그만큼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그 자리를 깨끗하고 공평무사하게 지켜낸 고위직이 많음을 뜻한다. 그 한 예로 40대 후반부터 50대 전반까지 10여 년 동안 육조판서를 역임하고 18년간이나 영의정자리에 있었던 세종조의 황희(黃喜)는 청백리의 대표적 귀감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숱한 일화를 남긴 인물로도 유명하지만, 그와 함께 맹사성(孟思誠), 유관(柳寬) 역시 세종조 대표적인 청백리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정옥자역사에세이, 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하다)
조선시대 청백리의 삶이 오늘의 공직자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질지를 필자로서는 짐작하기 힘들다. 시대의 가치관이 바뀌었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기준이 달라졌다는 것만큼은 필자 역시 잘 알고 있다. 조선시대 말기와 일제시대 그리고 현대사를 거치면서 숱한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역사 속에서 우리의 공직자들도 거듭되는 시련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폐허 속에서 재건이라는 명제를 짊어져야 하는 어려움도 많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공직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결같이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이다. 지금 일반서민들의 삶은 그야말로 바닥을 헤매고 있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고, 비싼 등록금을 내고 졸업한 대졸자들은 취업을 하지 못한 채 비정규직을 맴돌고 있다. 총 취업자의 약 25%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은 내일을 예측하기 힘들만큼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양극화의 심화로 국민들의 갈등지수는 갈수록 깊어만 가고 있는 지금의 국가현실 속에서 그래도 국가의 틀을 바꾸어 나갈 계층은 공직자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공직윤리의 정립은 그래서 중요한 덕목이며 더 나아가 이는 국가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국제기구에서 각 나라의 부패지수를 공개해 그 나라의 도덕적 자산을 경제자산 못지않게 중요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 수 없다.
저축은행비리를 보면서 공직자의 마음가짐이 곧 국가의 자산이며 그런 의미에서 조선시대 청백리와 같은 선비정신이 주목된다고 하겠다. 청백리와 같은 공직자를 찾아 널리 알리는 일이 급선무란 생각 간절하다.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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