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헌 정치팀장 |
# 손학규 : (일단 표정관리를 해야겠다.) 아슬 아슬 했어. 세간에 어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런다. 내가 강재섭 보다 가방끈이 조금 더 길어서 된 것 같다고. 서울대에 옥스퍼드대학원 정치학박사학위 받은 것이 교육열이 높은 분당에서 한몫 했다나.
어쨌든 2188표 차이. 막판 넥타이 부대의 힘이었나? 정말 천당과 지옥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사실 이번 선거에 출마하기까지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들은 떨어져도 당 대표로서 장수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도 있었지. 그러나 선거가 어디 그래? 자칫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던 거야. 사실 마음속으로는 조금 찜찜했다. 하지만 한 자릿수에서 좀처럼 오르지 않던 지지율을 생각해 보면, 결단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는 잘 됐어.
이젠 지지율도 두 자릿수로 올랐잖아. 대권 행보에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지지율에서도 훨씬 앞서가던 유시민도 단숨에 제쳐 버렸지. 이제 남은 것은 그동안 참았던 당내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해.
현재, 야권의 대권 후보군 중 아마 당내 지원군이 제일 적은 사람이 나일 거야. 물론 지금까지는 내가 자제해 온 것도 한 이유이기도 해. 잘못 하다간 더 큰 반발에 어려움에 처할 수 있으니까. 이제 여론을 바탕으로 조금씩 당을 장악해 나가면 될 거야. 마음은 급하지만 서서히 조심스럽게 해야 돼.
아직은 당내에 나를 거부하는 부류가 더 많아. 항상 그래왔지만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거든. 그들은 늘 나에 대해 한나라당에서 옮겼다는 '철새' 전력을 들먹거린다. 하지만 그것이 나쁘게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다른 후보들 보다는 좀 더 지역분열이 아닌 '통합'이라는 이미지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으니까. 수도권 출신에다가 너무 진보적인 이미지보다는 중도적인 색깔.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고도 볼 수 있지. 하지만, 앞으로 20개월 남은 대권행보에 끊임없이 넘어야할 과제임에는 분명해.
박근혜 만큼은 아니지만, 야권의 대선주자로 '손학규 대세론'을 굳히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 아닌가. 그런데, 유시민도 정동영도 정세균도 천정배도 아니고 문재인이 등장하고 있어. 물론, 나에게 부족한 것을 메워보려는 나를 견제하려는 세력의 충동질이 크게 작용하고 있겠지. 참신하다나.
노무현 재단 이사장인 문재인. 아직은 대선출마 가능성에 즉답을 피하고 있지. 야권의 적통인 운동권 투사 출신이고 공수부대 제대,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이란 이력. 그가 출마한다면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나와 같은 엘리트 이미지에 보수 중도층에도 어필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라는데. 현실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평가를 받았는지는 의문이다.
그건 그렇고, 여권에서 대항마는 누가 될까. 그동안 박근혜 대세론에 정몽준 정도를 생각했는데, 또 한사람이 나타났잖아. 나처럼 지옥의 다리를 건너온 사람이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 노무현 정신이 살아있을 거라 해서 야권단일화로 유시민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수용해 국민참여당 후보로 내세웠지만, 이를 뚫고 승리했다. 선거전 여론조사 결과를 완전히 뒤집었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 더 기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MB 비장의 카드. 40대 총리로 차기 대권후보군으로 급부상했던 지난해 '총리 낙마'라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총리는 곧 대권후보라는 공식이 있을 만큼, 그의 잠재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난 말년운이 좋다고 누가 그런다. 누가 나오든 '손학규식 정치'를 서서히 보여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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