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선사박물관을 비롯한 학계 연구원들이 3일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 쓰레기 매립장 조성현장에서 조선시대 미라와 복식 등을 발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민희 기자 photomin@ |
400여년 전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 4구가 3일 대전 유성구 금고동에서 잇따라 발굴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미라 머리맡에서는 한지에 한글로 쓴 편지가 발견됐으며 옷가지도 수십 벌 담고 있어 당시 한글 서체와 의복생활을 연구하는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날 미라가 발굴된 금고동 제2매립장 조성현장은 안정(安定) 나()씨의 종중 산으로 분묘를 옮기는 과정서 발굴됐다.
가장 먼저 발굴한 신창 맹씨의 목관은 생석회와 황토, 모래를 섞어 만든 회곽(두께 1m80cm)이 바위처럼 봉인하고 있었으며 나무로 만든 목곽이 목관의 주변을 한 번 더 둘러싸고 있었다.
중장비를 동원해 회곽을 깨고서야 발굴할 수 있었던 목관은 두께 10cm의 나무에 나비장으로 단단히 조여져 있어 목관 해체도 쉽지 않았다. 어렵게 해체한 목관 속의 신창 맹씨 미라는 각종 천으로 정성스럽게 감싸 있었다.
저고리부터 속치마, 장옷, 면포 등 살아생전 입었음직한 옷가지가 미라를 5겹 이상 감싸고 있었으며 머리춤에서 나온 솜옷은 당시의 남색 염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부산대 한국복식연구소 권영숙 소장은 “고인에 대한 아쉬움의 의미로 친지들이 평소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옷을 한나씩 넣어준 것 같다”며 “연꽃무늬의 비단과 무명솜치마 등은 1600년대 조선중기 사대부가문의 의복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신창 맹씨 미라의 머리맡에는 한지에 한글로 쓴 편지가 나와 발굴자들을 놀라게 했다.
400여년 전 매장된 무덤에서 한글로 쓰인 편지가 원형 그대로 발굴되는 것은 대전지역에선 처음으로 고인이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거나 사후 주변 친지들이 쓴 글일 수 있다는 게 발굴자들의 설명이다.
이밖에도 손가락 크기의 밥그릇 등 명기와 토기 20여점이 발굴됐으며 액운을 쫓는 부적이 발굴됐다.
한편, 이날 발굴된 신창 맹씨 미라를 포함해 분묘 3곳에서 여성미라 세 구와 남성미라 한 구를 발굴해 4일까지 해체를 완료할 방침이다.
/임병안·박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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