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생명을 앗아가는 논·밭두렁 태우기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이상길]생명을 앗아가는 논·밭두렁 태우기

[금요논단]이상길 산림청 차장

  • 승인 2010-02-25 14:14
  • 신문게재 2010-02-26 20면
  • 이상길 산림청 차장이상길 산림청 차장
대동강의 얼음이 녹는다는 우수(雨水)가 지났다. 추위가 가시고 봄기운을 실은 바람이 부드럽다. 겨우내 움츠렸던 숲도 기지개를 켠다. 남쪽의 지리산, 백운산 자락에선 고로쇠수액을 채취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올해는 눈이 많이 내린데다 밤낮의 기온 차가 커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 이상길 산림청 차장
▲ 이상길 산림청 차장
이처럼 봄기운이 돌면 자연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기지개를 편다.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늘어나고, 산자락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농업인들도 한결 바빠진다. 그러나 따뜻한 봄바람이 마냥 반갑지만 않은 것은 바로 그 훈풍을 타고 '산불'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봄이 되고 땅이 녹기 시작하면 산불도 어김없이 시작된다. 우리나라 산불은 먼저 논·밭두렁, 농산폐기물이나 집 주변의 묵은 쓰레기 소각에서 시작한다. 최근 10년의 산불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논·밭두렁 소각으로 인한 산불이 연 평균 140여건 발생하여 전체 산불의 27%를 차지한다. 주로 3월과 4월에 집중되어 있고, 불을 낸 사람은 대개 70세 이상의 지역 주민이 대부분이다.

지난 주말에도 충북 청원군에서 밭 주변의 쓰레기를 태우다가 산불로 번져 80대 노인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쓰레기 더미에 붙은 불이 산으로 번지자 애써 이를 끄려다가 사고를 당한 것인데, 이와 같이 논·밭두렁 태우기는 날씨가 풀리는 봄이면 매년 관행적으로 일어나 많은 산림이 소실 되거나, 소중한 생명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통계를 보면 최근 10년간 산불로 인한 사망자가 무려 90명이 넘는다. 모두 영농준비를 위해 논·밭두렁이나 농산폐기물을 태우다가 산불로 번진 경우다. 안타깝게도 피해자는 농산촌의 노인들이다. 이와 같이 순간적으로 번지는 산불 앞에서는 숲이나 사람 모두 속수무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농산촌 주민들은 70세를 넘긴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논·밭두렁 태우기가 산불로 번지는 위기상황에서 젊은이들보다 순발력이나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산불은 또 얼마나 무서운가. 우리는 작년, 정월 대보름을 앞둔 이맘때 경남 창녕의 화왕산에서 억새 태우기 행사 중에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제, 논·밭두렁 소각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논·밭두렁을 소각할 경우 해로운 벌레보다 이로운 벌레가 더 많이 사라져 농사에 오히려 나쁘다는 결과를 내 놓았다. 산림청도 논·밭두렁 소각으로 인한 산불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논·밭두렁 소각을 산불위험이 낮은 3월 초순까지 마칠 계획이다.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지정된 날짜에 마을 공동으로 소각하도록 지도하고, 산불감시원과 전문 예방진화대가 도울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산림과 가까운 경작지의 고춧대, 폐비닐 등은 '산림인화물질 제거반'을 운영하여 적극 수거할 계획이다. 2단계로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3월 10일부터 4월까지를 논·밭두렁 소각금지 기간으로 정해서 소각으로 인한 산불발생을 원천 차단하고, 무단으로 소각할 경우 단속도 강화할 계획이다.

봄철을 앞두고 농·산촌에서 논밭두렁 태우기가 산불로 번짐으로써 인적 물적 손실을 초래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불은 항상 작은 불씨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작은 불씨가 가지고 있는 위험이 나의 부주의로부터 일어날 수 도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불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자칫 잘못 다룰 경우 우리의 삶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 국민 모두의 세밀한 관심으로 금년 봄에는 산불로 인해 고통 받는 숲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대트랜시스 파업과 집회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과 불만 가중
  2. 대전서 조폭들 시민 폭행해 철장행…"불안감 조장 사회적 해악 커"
  3. 대전 도안2-2지구 학하2초 2027년 9월·학하중 2028년 3월 개교 확정
  4. "R&D 카르텔 실체 확인… 이대로는 쇠퇴만" 과기계 인적 쇄신·개혁 목소리
  5. 대전교육청 보직교사 배치기준 상향 조정, 교원 "업무부담 해소 기대"… 2025년 변화되는 주요 교육 정책 발표
  1. "만학도 교육권 보장하라" 예지중·고 학생들 거리에 모여 농성, 대전교육감에게 의견 전달도
  2. [아침을 여는 명언 캘리] 2024년 10월30일 수요일
  3. 대전서도 퍼진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방안은…대전시의회 정책토론회 개최
  4. [사설] 카드 결제로 본 생활인구, 효과 있었나
  5. 동절기 이웃사랑 김장 나눔

헤드라인 뉴스


대전 영양교사 배치 절반뿐… 내년 모집도 ‘역대 최저’

대전 영양교사 배치 절반뿐… 내년 모집도 ‘역대 최저’

청소년 비만율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식생활 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대전 내 영양교사 인원은 전체 학교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심지어 2025년 대전 영양교사 모집인원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전국 하위권을 기록했다. 학교 내 영양교사의 공백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부가 교원 감축까지 추진하고 있어 학생 식생활 교육 공백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31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대전 내 영양교사는 184명이다. 대전 전체 학교(특수학교 포함) 312곳 중 영양교사 배치는 유치원 1명, 초등 119명, 중등 23명, 고등 36..

대전 동구·충남 당진서 멧돼지 떼 출몰…당진서 2마리 잡혀
대전 동구·충남 당진서 멧돼지 떼 출몰…당진서 2마리 잡혀

10월 31일 저녁 대전 동구와 충남 당진 일대에서 멧돼지 떼 출몰 신고가 들어와 소방당국과 지자체가 수색을 벌인 가운데, 당진에서 2마리가 포획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주민 피해는 없었다. 1일 충남소방본부에 따르면, 전날인 31일 밤 9시 52분께 당진에서 멧돼지 2마리를 포획했다. 앞서 오후 6시 45분께 동구 낭월동에서 멧돼지 4마리가 출몰했다는 주민 신고가 들어와 대전소방이 수색을 벌인 바 있다. 곧이어 오후 7시 35분께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 석문산업단지에서도 멧돼지 3∼5마리가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슈]치솟은 아파트에 깊어지는 그늘…개발서 빠진 노후주거 `현안으로`
[이슈]치솟은 아파트에 깊어지는 그늘…개발서 빠진 노후주거 '현안으로'

산이 높은 만큼 골짜기는 깊어진다고 했던가, 대전에서도 부쩍 높아진 아파트만큼 그 아래 그늘도 깊어지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을 시행할 때 수익과 사업성이 기대되는 핵심 구역에서만 노후주택을 헐고 새 아파트를 짓고 있다. 새 아파트 옆에 낡고 노후된 주택과 상가가 그대로 남은 현장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주민들은 되살릴 수 없는 죽은 건물이 되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대규모 정비사업 후 남은 원주민의 구김살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49층 옆 2층 노후건물 '덩그러니' 대전 중구 은행동의 한 골목을 걷다 보면 49층까지 솟은 아파트..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학원연합회 ‘생명나눔’ 따뜻한 동행 대전학원연합회 ‘생명나눔’ 따뜻한 동행

  • 매사냥 시연 ‘신기하네’ 매사냥 시연 ‘신기하네’

  • 동절기 이웃사랑 김장 나눔 동절기 이웃사랑 김장 나눔

  • ‘해바라기 꽃이 피었습니다’ ‘해바라기 꽃이 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