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길 산림청 차장 |
봄이 되고 땅이 녹기 시작하면 산불도 어김없이 시작된다. 우리나라 산불은 먼저 논·밭두렁, 농산폐기물이나 집 주변의 묵은 쓰레기 소각에서 시작한다. 최근 10년의 산불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논·밭두렁 소각으로 인한 산불이 연 평균 140여건 발생하여 전체 산불의 27%를 차지한다. 주로 3월과 4월에 집중되어 있고, 불을 낸 사람은 대개 70세 이상의 지역 주민이 대부분이다.
지난 주말에도 충북 청원군에서 밭 주변의 쓰레기를 태우다가 산불로 번져 80대 노인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쓰레기 더미에 붙은 불이 산으로 번지자 애써 이를 끄려다가 사고를 당한 것인데, 이와 같이 논·밭두렁 태우기는 날씨가 풀리는 봄이면 매년 관행적으로 일어나 많은 산림이 소실 되거나, 소중한 생명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통계를 보면 최근 10년간 산불로 인한 사망자가 무려 90명이 넘는다. 모두 영농준비를 위해 논·밭두렁이나 농산폐기물을 태우다가 산불로 번진 경우다. 안타깝게도 피해자는 농산촌의 노인들이다. 이와 같이 순간적으로 번지는 산불 앞에서는 숲이나 사람 모두 속수무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농산촌 주민들은 70세를 넘긴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논·밭두렁 태우기가 산불로 번지는 위기상황에서 젊은이들보다 순발력이나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산불은 또 얼마나 무서운가. 우리는 작년, 정월 대보름을 앞둔 이맘때 경남 창녕의 화왕산에서 억새 태우기 행사 중에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제, 논·밭두렁 소각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논·밭두렁을 소각할 경우 해로운 벌레보다 이로운 벌레가 더 많이 사라져 농사에 오히려 나쁘다는 결과를 내 놓았다. 산림청도 논·밭두렁 소각으로 인한 산불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논·밭두렁 소각을 산불위험이 낮은 3월 초순까지 마칠 계획이다.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지정된 날짜에 마을 공동으로 소각하도록 지도하고, 산불감시원과 전문 예방진화대가 도울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산림과 가까운 경작지의 고춧대, 폐비닐 등은 '산림인화물질 제거반'을 운영하여 적극 수거할 계획이다. 2단계로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3월 10일부터 4월까지를 논·밭두렁 소각금지 기간으로 정해서 소각으로 인한 산불발생을 원천 차단하고, 무단으로 소각할 경우 단속도 강화할 계획이다.
봄철을 앞두고 농·산촌에서 논밭두렁 태우기가 산불로 번짐으로써 인적 물적 손실을 초래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불은 항상 작은 불씨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작은 불씨가 가지고 있는 위험이 나의 부주의로부터 일어날 수 도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불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자칫 잘못 다룰 경우 우리의 삶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 국민 모두의 세밀한 관심으로 금년 봄에는 산불로 인해 고통 받는 숲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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